▲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얼마 전이었다. 길을 걷고 있는데 ‘똑부 똑게 멍부 멍게’가 불현듯 툭 튀어나오더니 머릿속을 붙잡았다. 그러다가 이내 혓바닥도 붙들었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를 연신 되뇌고 있었다. 그러더니 ‘울지 않는 두견새’가 날아와 머릿속에 둥지를 틀었다. 온종일 거기에 붙들려 있었다.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하고)·똑게(똑똑하고 게으르고)·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하고)·멍게(멍청하고 게으르고)는 지도자와 참모의 유형을 분류하는 방법 중 하나다. 프로이센의 몰트케 원수가 사용한 방법이란다. 몰트케 장군은 비스마르크 수상, 룬 백작과 함께 독일제국의 3대 영웅이었단다.

대체로 지도자와 참모는 스스로 똑똑하고 부지런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지도자가 되고 참모로 역할한다고 생각한다. 자기도취와 자기연민이라는 인간의 보편 특징이 섞여 만들어 내는 착각이다.

실재하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명박처럼 야비하고 박근혜처럼 멍청해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숱하다. 봉건시대 왕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경영권을 세습하는 기업 풍토에서도 두드러진다. 멍청하고 게을러도 상관없다. 재벌가에 태어난 이유만으로 총수가 된다.

노동조합도 아니라 할 수 없다. 똑똑하고 부지런해도 소규모 사업장 활동가가 총연맹 위원장이 되는 것은 히말라야 등정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도 사업장 규모 덕택에 총연맹 위원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참모도 마찬가지다. 역사에는 지도자가 삼고초려해서 참모를 발탁했다는 사례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관계와 욕망 등이 얽혀 참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주변 다수가 멍청하고 게으르다 평가하는데도 핵심 참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현실 지도자와 참모에는 네 유형이 다 있다. 관건은 각 유형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지도자가 '똑부 똑게'라면, 참모 유형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지도자가 '멍부 멍게'라면 참모는 반드시 '똑부 똑게' 역할을 해야 한다. 필요하면 사약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야 지도력이 무너지지 않고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

한편 몰트케 구분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황에 따라 신중함과 경솔함, 과단성과 우유부단함, 자기결단과 통합력 등으로 대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 지도자와 참모에게는 욕먹는 것도 기준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지도자와 참모가 너나없이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형이라면,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우물쭈물하다가 통으로 욕먹고 지도집행력을 상실하는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을 빗댄 일화가 있다.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 어찌할 것인가"에서 셋의 태도가 확연하게 달랐다는 것으로, 각각의 통치력을 빗대어 비교한 일화다. 노부나가는 단칼에 죽인 다음에 우는 두견새를 데려왔고, 히데요시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울게 만들었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세 통치자 모두 그렇게 단적인 유형은 아니었지만 그런 특징이 두드러졌던 것 같다.

셋 중 어떤 방법이 늘 답일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법이 다를 것이다. 아무튼 재미있는 분석 방법이다. 실제로 현재 노·사·정에서 지도자 또는 참모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분석하다 보면 어느 한 특징이 도드라지는 경우를 발견하는데 상황에 따라 웃음 짓기도 하고 한숨 쉬기도 한다.

이제 결론이다. 문재인 대통령 체제의 청와대·고용노동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하고 싶은 얘기다. 그리고 김명환 위원장 체제의 민주노총에 하고 싶은 얘기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정부와 민주노총은 '노정-노사-노사정' 중층의 사회적 대화를 향해 걷고 있었다. 최종진 체제의 민주노총은 일자리위원회에 참가했고, 김명환 체제의 민주노총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그 과정은 계란마차를 몰고 가는 것과 같았다. 지난 과정을 반면교사 삼아 조심조심 끌었다.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홍영표가 과욕이었든 오판이었든, 혹은 다른 그 무엇이었든 계란마차에 거칠게 발길질했다. 사회적 대화는 난관에 봉착했고, 교착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상황, 상대방에 반작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자신의 기조를 확인하고 상대를 분석하며 적극적 전략·전술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사회적 대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역점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사회적 대화는 지난 민주노총 선거 출마자 넷 중 셋의 공약이었다. 셋 중의 하나였던 김명환 위원장이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 지도자와 참모는 어떤 유형이고 단점을 극복하려면 무엇을 보충해야 할 것인가. 울지 않는 두견새, 어떻게 울도록 할 것인가.

전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jshan8964@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