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남색과 옥색 작업복을 입은 1천500여명의 노동자들이 서로의 이마에 빨간 머리띠를 동여맸다. 머리띠엔 "삼성에서 노조하자"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삼성그룹 계열사 4개 노조가 삼성의 노조파괴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며 결의대회를 열었다. 금속노조가 주최한 이날 대회에 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삼성지회·삼성웰스토리지회와 서비스연맹 삼성에스원노조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4개 노조는 올해 4월 삼성 무노조 경영에 함께 맞선 공동행동을 결의했다. 4개 노조는 이날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부 결의대회를 하고, 신논현역에서 삼성전자 서초사옥까지 행진한 뒤 그곳에서 2부 결의대회를 했다.

1부 결의대회를 하는 동안 서울 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았다. 모자와 선글라스·쿨토시로는 역부족이었다. 조합원들은 땀범벅이 됐다. 부산지역 한 조합원은 “세 살배기 아기를 두고 휴일에 4시간 버스를 타고 집회에 왔다”며 “덥고 힘들지만 (조합원이) 해야 하는 일이라서 왔다”고 말했다.

“직접고용 뒤에도 노조를 튼튼한 울타리로 만들 것”

노조는 1부 결의대회에서 "삼성과 국가기관의 정경유착을 끊어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와해 의혹 책임자 처벌도 요구했다. 이승열 노조 부위원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삼성의 노조파괴가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는지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며 “노동자를 위해 일하라고 만들어 놓은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삼성의 돈을 받고 노조탄압을 기획하고 앞장선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삼성측에 노조 관련 정보를 주고 뒷돈을 챙긴 혐의로 전직 경찰청 간부를 구속했다. 이승열 부위원장은 “검찰과 법원, 정치인, 언론도 무관하지 않다”며 “2013년 심상정 의원이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폭로했을 때 제대로 된 수사와 공정한 보도를 했더라면, 그래서 삼성의 노조파괴를 멈춰 세웠더라면 최종범·염호석 열사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헌법이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도 삼성은 80년 동안 3대가 무노조를 경영이념으로 삼았다”며 “검찰은 엄정한 잣대로 조사해 삼성 노조파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청와대를 향해 “삼성의 범죄를 정의에 따라 처단하기 전까지 면죄부를 주는 듯한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된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실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삼성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자”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청와대 사랑채 앞에 울려 퍼졌다.

“4개 노조 단결해 삼성그룹 노조 만들자”

2부 결의대회에서는 4개 노조가 차례로 발언했다. 이들은 “삼성그룹 4개 노조가 단결해 삼성그룹 모든 계열사에 노조를 만들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임원위 노조 삼성웰스토리지회장은 “80년 무노조 삼성에서 노동 3권을 보장받지 못했고 삶의 질도 무너져 내렸다”며 “유노조 삼성 100년, 200년은 삶의 질 또한 역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봉렬 삼성에스원노조 위원장은 “삼성은 노조를 탄압하고 노동자에게 고통과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며 “삼성의 모든 곳에 민주노조 함성이 울릴 때까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두 노조 삼성지회 CS모터스분회장은 “4개 노조가 하나 돼 삼성그룹 모든 곳에 노조를 설립하고 정당한 노동자 권리를 찾는 투쟁에 나서겠다”며 “삼성 자본에 맞서 한 치의 물러남 없이 이길 때까지 승리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두식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직접고용된 뒤에도 우리가 다닐 직장에서 가장 크고 든든한 울타리인 노조를 만들어 가려 한다”며 “노조 없이는 삼성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나 지회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조직화”라며 “다음에는 지금 인원의 두 배를 만들어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2부 결의대회 사회를 맡은 황수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외협력부장은 “노조는 연쇄작용인 것 같다. 삼성지회가 2011년 설립된 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2013년에 생겼고, 삼성웰스토리지회와 삼성에스원노조가 지난해 출범했다”며 “4개 노조가 탄탄한 활동을 바탕으로 삼성그룹에 노조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에 "제대로 된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노사는 올해 4월 직접고용에 합의한 뒤 지금까지 16차례 실무교섭을 했다. 사측은 이달 중 열린 16차 실무교섭에서 임금기초안과 직급체계안을 제시한 상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는 “당초 노조 설립일인 7월14일까지 논의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조금 지연됐다”며 “직접고용 전환이 8~9월쯤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