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포함한 노조할 권리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본격 시작됐다. 노사정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필요한 의제와 법률 개선방안을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전인 8월까지 논의하기로 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문성현)는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S타워 버텍스홀에서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를 발족했다. 경사노위는 “노동존중 사회 실현의 주체인 노사 당사자가 상호 존중과 협의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개선위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문성현 위원장 “기업별 노사관계 뛰어넘어야”

문성현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기업별 노사관계를 뛰어넘는 사회적 노사관계를 어떻게 만들지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목표로 하는 내년 ILO 100주년을 맞아 핵심협약 비준에 필요한 의제를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국 정부는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29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핵심협약 비준을 비롯해 △실직자·구직자·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 △근로시간면제·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개선 △쟁의행위 손배·가압류 남용 제한 같은 노조할 권리 보장을 약속한 바 있다.

개선위는 노사정과 공익위원 13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노동계(2명)에서는 한국노총의 정문주 정책본부장과 유정엽 정책실장이, 재계(2명)에서는 김영완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박재근 대한상의 상무이사가, 정부(1명)에서는 김민석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이 참여했다. 공익위원은 7명이다. 김인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김성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박은정 인제대 교수(법학과)·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조용만 건국대 교수(법학과)다. 민주노총이 참여할 경우 한국노총 1명이 빠지고 그 자리를 대체한다.
 

8월 말까지 ILO 핵심협약 의제 집중 논의

개선위 임기는 내년 7월19일까지 1년이다. 필요하면 1년 이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이날 개선위 1차 전체회의에서는 운영방향 논의 결과 7~8월 일주일마다 만나고, 9월 이후에는 격주마다 만나기로 했다. 정기국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논의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박수근 위원장은 “노동기본권 실현을 위해 법·제도 과제에서 미흡한 점을 골라내 제대로 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는 글로벌 단계에 있는데 국제노동기준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면 ILO 관점에서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선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쟁점과 법·제도 개선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된 사례를 중심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개선위는 노사자치 실현을 위한 노사관계법제 검토와 개선방안, 노동기본권 실질적 보장을 위한 쟁점과 개선방안도 논의 의제로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사자치 실현을 위한 쟁점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간접고용관계 공동사용자 책임 등이 해당된다.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쟁점은 △공무원·교원 노조할 권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 개념 △쟁의행위 손해배상·가압류 제한 등이다.

노사정 의제 제출, 한국노총 “노동기본권 강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된 사례는 뭐가 있을까. 개선위에 따르면 그동안 모두 12건이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됐다. 1건에 여러 쟁점이 포괄돼 있는 경우가 다수다.

유형별로 보면 △교사·공무원·사립대 교수·특수고용종사자에 대한 노조 설립·가입을 제한하는 경우다. 전교조·공무원노조 사안이 대표적이다. 이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과 처벌 규정, 근로시간면제 제도 통제 등 노조운영 제한 유형 △정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등 단체교섭 제한 유형 △쟁의행위 형법상 업무방해죄 적용, 쟁의행위·노조활동 손배·가압류 적용, 노조집회에 경찰력 투입 등 노조법 이외 유형이 있다.<표1 참조>

하지만 개선위에서 논의할 의제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날 개선위에서는 노사정이 각각 요구하는 의제를 제출했다.<표2 참조> 한국노총은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기본권 의제로 △실직자(해고자)·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 △근로시간면제 제도 폐지와 노사자율 보장·단체협약 시정명령조항 삭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폐지와 복수노조 자율교섭 보장 △공무원·교원 노동기본권 확대 △쟁의행위 손배·가압류와 민형사 책임제도 개선 △필수유지업무 폐지와 공익사업 범위 축소를 제시했다.
 

경총 “근로시간면제 축소” 노동부 “ILO 권고 이행”

한국경총은 “불합리한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3년 이상) 연장 △노조 부당노동행위제도 신설 △조합원 규모별 근로시간면제한도 축소 △고공농성 등 불법 시설물 점거와 1인 시위 개선 등을 내놓았다.

노동부 의제는 문재인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의 가늠자라는 점에서 관심사다. 노동부는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노조임원 자격 제한 △해직 공무원·교원 노조 가입 제한 △공무원·교원 단결권 보장 확대를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노동부는 “ILO는 실업자·해고자 조합원 자격 유지와 조합원의 임원자격 제한 조항 삭제를 권고하고 있다”며 “전교조·공무원노조 등 해직 교원·공무원의 노조 가입 제한은 협약 위반이라며 단결권 보장을 지속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ILO는 (경찰·군인을 제외하고 가능한) 모든 공무원·교원의 자율적인 노조 설립·가입권리 보장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개선위는 이날 노사정이 제시한 의제를 간사회의를 거쳐 정리한 뒤 27일 회의에서 의제를 확정하기로 했다. 다만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과제는 가급적 8월 말까지 논의를 마치기로 했다. 박수근 위원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며 “가능하면 8월까지 정리해서 넘겨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정기국회서 핵심협약 관련 국내법 통과될까
정치적 시간표 빠듯, 민주노총 대화 복귀 관건


실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마무리하기에는 ‘정치적 시간표’가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유지되고 사실상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전인 올해 안에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전주에 비해 2%포인트 하락한 6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5주 연속 하락세다.

개선위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개선위에서 논의할 의제가 교사·공무원 단결권과 쟁의행위 손배·가압류 등 상당수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과 밀접한 의제다. 민주노총은 지난 19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지만 사회적 대화 복귀에 대한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개선위 역시 최저임금위원회처럼 노동계로서는 중과부적”이라며 “전교조가 폭염에 지쳐 가고 있는 상황에서 조합원을 위해서라도 민주노총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경사노위는 같은날 오전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위원회(위원장 전병유) 발족식을 가졌다. 이로써 경사노위는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위원장 장지연)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위원장 박두용)를 포함해 4개의 의제별위원회 구성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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