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달 기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노동자들이 병원이 생긴 지 38년 만에 파업을 예고했다. 지난해 노조가 설립됐는데 무려 98.3% 조합원이 쟁의행위에 찬성했다. 노동자들은 왜 분노하고 있을까.

올해 노동자들이 내건 임금·단체교섭 요구안을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기본급 20% 인상 △주 5일제 보장 △적정인력 충원 △노조활동 보장 △공정인사 △갑질 부서장 징계를 요구했다.

23일 대구 남구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송명희(35·사진) 공공운수노조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분회장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노조를 만든 이유를 묻자 수술실 근무 시절을 회고했다. 10년 동안 사실상 동결된 임금, 혼자 하는 나이트(밤샘조) 근무 때 당한 폭행의 기억,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그에게 돌아온 답. “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병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부당한 갑질에 시달린 얘기, 억지로 종교행사에 끌려간 얘기가 수없이 올라왔다. 송명희 분회장은 “병원 시스템 문제“라고 했다. 시스템을 바꾸려면 노조가 필요했다. 노조는 지난해 12월 만들어졌다. 올해 2월 어렵게 성사된 교섭은 5개월 만에 파국에 이르렀다. 지금은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서 쟁의조정을 하고 있다. 24일까지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분회는 25일 파업에 돌입한다.

- 노조를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수술실에서 일할 때 나이트 근무를 혼자 한 적이 있었다. 응급수술을 위주로 하다 보니 상황이 심각한 환자들이 많아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다. 한 번은 환자에게 맞은 적이 있었다. 손에 잡히는 건 다 쥐어뜯고 욕도 하고 그러더라. 결국 경찰을 불렀다. 너무 무서웠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진단서를 끊고 산업재해보상 신청이 가능한지 수간호사한테 물어봤다.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네가 원하는 게 도대체 뭐냐’였다. 내가 이 병원에서 직원으로서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른 병원이라고 다를 게 없다. 개인 수간호사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 시스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너스케입’(간호사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대한 글이 올라왔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600여명의 사람들이 카카오톡 익명방에 모여 자기가 경험했던 부당한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관리자들의 이삿짐을 나르고 눈이 오면 눈을 쓸어야 했고, 장기자랑과 강제적인 종교행사 같은 증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노동조합으로 모였고 한 달도 안돼서 560여명이 가입해 지난해 12월27일 의료연대본부 대구지역지부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분회가 출범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정식집에서 첫 모임을 하던 그 떨렸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 임단협은 어떻게 되고 있나.

“노조설립 9일 만에 의료원장과 첫 노사면담을 했다. 논란이 됐던 임산부 강제 야간근무와 간호사 장기자랑은 바로 없어졌다. 하지만 의료원장은 교섭에 나오지 않겠다며 시간을 끌었다. 의료원장을 교섭자리에 앉히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이후 5개월 동안 교섭을 진행했지만 진전이 없었고 결국 98.3%라는 높은 찬성률로 파업까지 결의하게 됐다. 예상하고 있는 파업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항상 뵙던 환자분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요구안들이 받아들여지고 망가진 병원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환자분들에게도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숙련된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떠나가게 만드는 노동조건, 숙련된 노동자를 해고하고 새로운 알바생을 채용하는 비정규직 문제, 갑질 부서장 눈치 보느라 매번 긴장상태에서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불안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까?”

-교섭 쟁점과 투쟁계획은.

“압도적인 찬성으로 조합원들이 분노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재단의 중앙집권식 수직적 구조에서 비롯된 병원 시스템이 관리자 중심의 비민주적 운영으로 나타났다. 10년 동안 실질임금이 동결됐다. 임금인상과 공정인사, 노조활동 보장,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주요 쟁점이다. 25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으나 앞으로 지방노동위원회 조정회의나 노사 간 자체 교섭을 통해 최대한 파업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조가 노력해도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으면 무기한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

- 환자와 시민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원 노동환경은 환자들에게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의료서비스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적은 인력으로, 불안하게 일할수록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또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대구가톨릭대의료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망가진 병원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진정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발돋움하는 것, 노동자들도 마음 놓고 일하고 환자들도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투쟁 목표다. 많은 지지와 연대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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