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노조
폭염경보가 내린 지난 17일, 20년 경력의 베테랑 목수 박아무개(66)씨가 전북 전주 효천지구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단순 추락사로만 알려졌지만 박씨가 추락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장에 있던 동료들에 따르면 박씨는 무더위 속에서 계속된 작업으로 정신을 먼저 잃고 쓰러졌다. 5미터 높이에서 거푸집 결합 작업을 했지만 추락방지 안전망은 없었다. 동료들은 충분한 휴식만 취했어도, 제대로 된 안전시설만 갖췄어도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고 입을 모은다. 박씨가 목숨을 잃기 하루 전 계속된 더위에 한 노동자가 탈진했고 박씨를 비롯한 현장 동료들은 작업시간 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원청 건설사는 “공사 일정이 빠듯하다”며 거절했다.

“세면장 없어 안전모에 물 받아 세수”

전국에 폭염경보가 계속되는 가운데 옥외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6일 세종 한솔동 보도블럭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A씨가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A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날 끝내 사망했다. 21일에는 지상 50미터 높이에서 작업하던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폭염에 탈진해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24일 건설노조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와 ‘열사병 예방 기본수칙’을 발표하며 안전보건에 대한 강도 높은 감독을 예고했지만 건설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노동자들은 샤워장은 물론 세면장도 없는 현장에서 안전모에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가하면 해를 피할 휴게시설이 없어 공사현장 바닥에 합판 한 장 깔고 몸을 누이고 있다. 이렇게라도 휴식을 취하면 다행이다. 정부 가이드에 따라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는 긴급작업을 제외하고는 작업을 중단해야 하지만 이 시간에도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박씨가 사망한 현장에서 함께 일한 송영철 노조 전북건설지부 전주분회장은 “하루 300여명이 일하는 현장에 화장실은 고작 몇 칸에 불과했고 물 한 방울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그늘막 하나 없이 쪼그려 앉아 잠시 쉬는 게 다였다”고 말했다.

이영철 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건설사는 45분 일하고 15분 쉬라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다”며 “일당을 받는 건설노동자들은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영인 노조 서울건설지부 현장팀장은 “더운 날씨에 잠깐 쉬기라도 하면 그만큼 물량이 밀릴 수밖에 없고 결국 ‘당신들은 일 안 하고 뭐했냐’는 말이 돌아온다”며 "정부 정책이 건설현장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건설노동자 85.5% “폭염에도 작업중단 없이 일해”

노조가 이달 20일부터 22일까지 토목건축 노동자 2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1%가 폭염 관련 정부 대책을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식공간이 마련된 건설현장은 9.7%에 불과했으며 시원한 물조차 제공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24.1%나 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에 따르면 폭염경보가 발령될 경우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관련 사실과 조치사항 정보 제공 △신규입사자·휴가 복귀자에 대한 고온환경 적응 프로그램 운영 △휴식시간 더 자주·더 길게 배정 △오후 2~5시 사이 긴급작업 외 작업 중단 △시원한 물 제공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노조 조사에서 건설노동자의 74.4%가 “폭염 관련 안전보건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고, 85.5%는 폭염경보 속에서도 별도의 작업중단 지시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48.4%의 노동자는 폭염으로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거나 이상징후를 보이는 것을 경험·목격했다.

이영철 위원장은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지침으로 건설현장 온열질환 예방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만악의 근원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구조 아래에서는 정부 대책과 무관하게 쓰러지고 죽어 나가는 건설노동자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외국처럼 동절기·하절기·장마철에 지급하는 계절수당을 건설현장에 도입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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