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미처 예상 못했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16.4% 인상으로 한국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마중물이 될 거란 기대를 잔뜩 받은 지 1년이 지났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노동공약으로 주목받던 최저임금 1만원이 노정 갈등의 진원지로 급변한 현실이 비현실적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매개로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가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보자는 애초 목적은 멀어지고 있다. 날선 공방과 적대적 대립이 연일 뜨겁다. 출구는 없는 것일까. 촛불항쟁으로 확인된 우리 사회 성숙한 민주주의의 힘이 노동문제 앞에선 왜 이렇게 여전히 무력한 것일까. 감정노동 속에 날로 고심이 깊어져 가는 요즘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시대적 요구였다. 지난해 19대 대선에서 주요 여야 정당 후보들이 모두 공약으로 내세웠다. 달성 시기가 달랐을 뿐 최저임금 인상이 기형적인 구조적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 사회의 해법 중 하나로 공인받은 셈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사회적 합의였고 정치적 약속이었고 희망의 근거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올해 최저임금위원회 활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성과 위에서 이후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성과와 의미부터 정리해 보겠다. 첫째, 힘겹게라도 두 자릿수 인상률을 이어 갔다. 산입범위 확대로 한 자릿수 인상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타당하지만, 개악된 조건 속에서 인상 수준이 더 중요해지기도 했다. 사용자위원 전원이 불참하면서 생긴 틈새 기회를 공익위원들과 한국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이 잘 활용한 결과다. 둘째, 공익위원 구성이 전향적으로 개선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특히 공익위원의 과반인 다섯 명이 여성이었다. 셋째, 소상공인들의 거센 조직적 반발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을들 간 대립이 부각되면서, 역설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아 온 고율의 임대료와 제반 수수료를 비롯한 핵심 문제 선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짓는 막후의 핵심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으로 끌려 들어온 것이다. 넷째, 사회적 대화 필요성이 방증됐다. 산입범위 문제에서부터 지나치게 높은 위반율 문제, 을들의 대립 해소와 재벌·건물주 중심 사회경제구조 혁신 등에 이르기까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계급·계층 간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최저임금 인상의 선순환 효과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노사정 모두 최저임금에만 매달리는 편집증을 벗어나야 합리적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노동공약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달성이 불가능해졌다. 산입범위가 확대된 조건에선 15.3% 이상 인상됐어야 함에도 실패했다. 둘째, 집권여당 홍영표 원내대표의 판 깨기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인상률과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신중했어야 한다. 고정상여금으로 한정해 산입범위를 늘리는 합리적 대안으로 정리했어야 함에도 여야 합의를 빌미로 복리후생비까지 포함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까지 개악한 건 용납하기 어려운 처사였다. 최저임금위로 결정을 넘겨 달라는 양대 노총과 경총의 합의마저 묵살한 것도 지나쳤다. 더구나 최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자유한국당에 맡겨 버린 것도 어이없는 결과다. 최저임금법 재개정은 어떡하려고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양대 노총 패싱을 넘어 노동을 포기한 건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셋째, 역대 최소 최저임금위원 참여로 결정돼 사회적 공신력이 낮아졌다. 27명 위원의 과반을 겨우 넘긴 14명의 위원들이 500여만 저임금 노동자들과 수백만 영세 자영업자들의 이해가 걸린 중대한 사안을 결정한 것이다. 사용자위원들은 인상률 논의에서부터 아예 불참했고 민주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도 불참했다. 특히 청년유니온 노동자위원의 불참은 뼈아팠다. 초유의 불참 사태로 최저임금위 위상이 어느 때보다 위태로워졌다. 넷째,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가 핵심쟁점이 되면서 가구생계비 기준 적용 문제와 최저임금 위반율 최소화 방안 논의가 실종돼 버렸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다섯째, 임금 합의의 전제인 신의성실 원칙이 깨지고 있다. 2019년 최저임금 10.9% 인상이 결정되자 소상공인 단체들이 불복종운동을 선언하고 인상된 최저임금을 어기자고 주장한다.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여섯째, 9명의 노동자위원들 중 여성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 최저임금 문제는 비정규-청년-여성노동자 임금 문제다. 여성위원이 2명인 사용자위원 구성과 대비해서도 민망한 일이다.

2018년 최저임금위는 두 자릿수 인상률을 유지했지만 1만원 공약은 그르친 차악의 결과로 끝났다. 이제 최저임금 1만원 운동도 기로에 섰다.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도 마련이 절실하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 다음은 무엇일까. 생활임금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과 인상을 통한 경제 선순환구조를 만들 방도를 동시에 마련하는 운동이 요청된다. 을들의 연대를 비롯해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불러일으킨 우리 사회의 변화 흐름을 이어 갈 후속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그것이 사면초가에 갇힌 최저임금을 구하는 길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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