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노회찬이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이 월요일 사무처회의 중에 전해졌고 우리 모두는 경악했습니다. 우리는 가짜뉴스가 아니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고, 주요 언론 속보로 떴으니 확실한 것 같다고 누군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다들 참담해 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긴 했으나 본인이 부인했기에 우리는 믿고 있었습니다. 혹시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목숨까지 던진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관심을 잘 보이지 않는 후배에게서도 문자가 왔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노회찬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나요?” 노회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이렇게 큰 줄 우리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노회찬 빈소에 조문객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이 많고 가족이 같이 문상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빈소를 지키는 당직자들 얘기로는 당원이 아닌 분이 더 많다고 하는군요. 노회찬이 방송에도 자주 출연하고 사이다 같은 시원한 발언으로 인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국민은 촛불혁명 이후 촛불정신을 구현하도록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권에 위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이나 한반도 평화정착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모습을 보여 크게 실망했습니다. 특히 홍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실망을 넘어 정치혐오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거기다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무기력하거나 기회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촛불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헌법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법률 제정이나 개정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국민의 배신감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때 깜박이는 희미한 불빛으로 보인 것이 진보정당 정의당이었고 스타정치인 노회찬이었습니다. 정의당은 국회 안에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 고육지책인 평화당과의 연합전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잡소리나 헛소리 안 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노회찬이 방송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JTBC <썰전> 같은 프로그램에도 나가서 온몸을 던져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원내대표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국민의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정의당 지지율이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넘나들게 됐습니다. 국민은 정의당과 노회찬에게서 다윗과 골리앗의 일전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은 안타까워합니다. 그 정도에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속상해합니다. 노회찬은 달랐습니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로 진보운동을 하는 자의 참모습을 보여 줘 교훈이라도 남겨야겠다는 것이 마지막 판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진보정치인으로 시퍼렇게 눈을 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 나가노 금강사에 계신 무상법현 스님이 쓰신 ‘정의(노회찬)거사께’라는 추모시를 마지막 가시는 길에 바칩니다.

“그리/ 마음 쓰이던가요/ 그래/ 그랬겠지요// 그 옛날/ 피어오르던/ 연꽃향기에 취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던 수행자가 있었네요/ 그저 맡았다고도 하고/ 눈병에 좋다 해 그랬다고도 하지요// 꽃향기도둑아/ 멈추지 못할까 하는 된소리/ 하느님(天神)에게 듣고/ 자취 없는 향기 좀 맡았기로서니/ 무얼 그리 야단하는 거냐/ 볼멘소리 했다네요 //…//연꽃 뿌리째 뽑아 가는 자 보고서도/ 흠 투성이의 사람에게/ 말해 무엇하겠나/ 흠 없는 사람에게 말해야지 하고/ 하느님은 가르쳐 줬다네요// 꽃도/ 꽃이 피어 있는 연못 주인도/ 그대에게 가지라고 하거나/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큰 잘못이네 라고// 간다테나숫따, 화경(花經)에서/ 하느님이 말한 그 소리/ 들었던 게요/ 그대 정의거사// 때투성이 앞치마 두른 식모에게/ 한둘의 티가 느껴지겠소/ 흠 없는 모시옷의 주인공이니/ 들었던 게요 // 나에게도 남에게도/ 잘못하고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했으니/ 그만큼인 것이 아쉽지만/ 훤출히 벗어나고 있다는 걸/ 알만한 이는 다 알고 있으니/ 어서 쉬소서// 아으/ 그대같이 티 적은 이 다시 쉽지 않으리/ 아으/ 그대같이 티 느끼고 아파할 이 다시 없으리/ 아으/ 부디 미타찰에 나기 전 그 티도 떨어내소서/ 아으/ 다른 생각 할 것 없소/ 아으 쉬소서, 크게 쉬고 또 쉬소서”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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