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지난 12일 ‘교육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에스티유니타스 회사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올해 초 장시간 노동과 직장내 괴롭힘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웹디자이너 고 장민순님의 죽음에 대한 사과였다. 고인의 죽음에 대해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이와 관련한 응분의 조치를 포함한 재발방지 대책과 함께, 장민순님이 바랐던 대로 에스티유니타스를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로 탈바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고인의 언니가 회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선 지 87일 만이었다.

사건이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지고 대책위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청년유니온은 대책위에 합류했다. 조합원 중에서 웹디자인 계통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도 했지만, 고인을 보며 tvN에서 일했던 이한빛 PD 생각이 많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인이 겪었던 ‘하루면 되는 일이다. 나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낼 것이다’ ‘이렇게 할 거면 왜 시간을 줘야 하지?’라는 모멸적인 언사나 스스로 자아비판을 업무일지에 쓰도록 강요하는 조직문화, 일상적인 초과업무는 청년이 일터에서 겪는 여러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교육 관련 산업은 청년 종사자가 많은 산업 중 하나다. 그 산업의 주된 소비자도 청년들이다. 하지만 다른 교육업체의 노동현실도 에스티유니타스에 못지않았다. 인터넷에서 이름난 교육업체를 찾아보면 하나같이 높은 퇴사율을 보였고, 간혹 “빨리 도망쳐”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입시지옥에 이은 청년실업을 배경으로 급격히 성장한 교육업계 전반의 노동현실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막상 사건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면서 당황스러웠다. 7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회사에 출퇴근 기록 시스템조차 없다. 전자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기록부조차 없었다. 이례적으로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하다 압수수색으로 전환할 정도였다. 회사측 대응도 당혹스러웠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직후에도 ‘최종합격 예측서비스’를 실시한다거나 ‘프리패스 상품을 선보였다’는 등의 홍보성 기사가 계속됐다. 유족과 대책위 요구에는 어떠한 대답도 없이 근로환경 혁신위원회를 출범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기사를 찾아보면 ‘칸막이 없는 사무실에서 같은 책상과 의자를 사용하며 위계 없는 평등한 기업문화’를 만든다거나, 탁구대회·다이어트 대회를 연다고 하고,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복도에 전시해 놓는다는 내용도 있다. 퇴사자 증언에 의하면 한 사람이 세 사람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너무 좋은 기회 아니냐. 세 사람 몫을 할 수 있다니”라는 말도 했다. 신생기업이 급격히 커지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내리꽂는 조직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중소규모 회사들을 전전하면서 만난 동료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직업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소변까지 참아 가며 오랜 시간 앉아 일하는 탓에 방광염과 항문질환, 여성의 경우 난소질환을 경험한 경우가 흔했고 더욱 흔하게는 시력 저하, 손목터널증후군, 손가락 관절통증, 거북목 등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질병을 보편적으로 겪습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시각디자인 일을 하셨던 분이 남긴 이야기다. 그만큼 이 죽음이 얼마나 일반적인 일인지를 보여 준다. 관련 종사자 그룹에 올린 글에는 많은 분들이 함께 슬퍼해 주셨다. 5월18일에는 항의 플래시몹에 함께하기 위해서 50여명의 시민들이 삼성역 앞에 모였다. 사회적 지지와 많은 시민들의 연대가 결국 회사에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게 만들었다.

회사는 장민순님의 죽음에 대한 사과와 이와 관련된 책임자에 대한 조치, 산재보상 신청을 위한 협력을 약속했고, 법정근로시간 준수와 근무환경 혁신위원회의 자율적·민주적 운영을 보장하며, 고충처리센터 운영 등을 약속했다. 사실 회사가 약속한 내용은 아주 당연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내용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 청년 일터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약속이 잘 지켜질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노동조합도 없고 노동조건에 대한 ‘룰’이 없는 기업에, 그리고 ‘사람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경쟁해 온 교육 기업들의 성장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다시는 이런 죽음 없이 일하는 사람의 노동이 온전히 존중받는 건강하고 행복한 일터가 되기를 기원한다.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youngmin@youthun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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