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직업성암 산업재해 인정절차가 간소해진다.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 역학조사는 건너뛰고, 동일·유사공정 종사 여부만으로 산재인정 여부를 가린다. 신청인에게 과도하게 부여됐던 산재 입증책임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고용노동부는 6일 "백혈병·다발성경화증·재생불량성빈혈·난소암·뇌종양·악성림프종·유방암·폐암 등 직업성암 8개 상병은 업무관련성 판단을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노동자가 직업성암에 걸리면 근무공정과 근무기간, 해당 공정에 사용된 화학물질과 노출정도를 규명하기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역학조사를 의뢰하는 절차를 거쳤다. 역학조사가 6개월 이상 이뤄지는 데다, 회사측이 협조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사례가 허다했다. 획일적인 역학조사가 노동자·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된 배경이다.

노동부는 앞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종사자들의 산재인정 판례를 통해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인정된 8개 상병에 대해서는 역학조사를 생략한다. 대신 동일·유사공정 종사 여부를 조사해 판정한다.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산재 신청이 접수되면 지사는 정해진 양식에 따라 재해자의 △근무시작과 근무종료일 △사업장 △공장 △라인부서 △공정대분류 △공정소분류 △직무 △작업방법 △근무장소 △근무형태 △유해요인을 조사해 공단 본부에 보낸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로 구성된 본부 업무상질병자문위원회가 재해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동일·유사공정 여부를 판단한다. 동일·유사공정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만 역학조사를 한다. 노동부는 8개 상병 외에도 법원이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는 상병을 추가할 계획이다.

산재처리 절차 간소화 대상을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으로 한정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민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충청지사)는 "반도체 계열 유사 업종이 많고 노동자 작업환경도 거의 비슷하다"며 "산재 인정절차 간소화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국한시켜 아쉽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관계자는 "일단 논란이 많이 됐고 판례도 축적돼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로 한정했다"며 "판례가 나오면 상병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이어 제조를 비롯한 타 업종에서 발생하는 직업성암에 대해서는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노동부는 산재신청인과 산재입증에 필요한 사업장 안전보건자료를 공유하고, 신청인(대리인 포함)이 사업장 현장조사에 동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사업장에서 자료제공이나 현장조사를 거부하면 신청인 주장에 근거해 업무관련성을 판단한다. 박영만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반도체 종사자 산재인정 처리절차 개선으로 산재노동자 입증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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