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민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유성기업영동지회 사무장

그때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2010년 경주 발레오만도 공장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쳤다. 사측 노조파괴에 맞서는 발레오만도 동지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장에 돌아오니 발레오만도 패배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을 접하고 주변 동지들과 저런 공격이 들어오면 우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몇 명이 남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진짜로 그런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상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인 2011년 5월18일. 유성기업 사측의 노조파괴가 시작됐다. 사측의 준비는 그날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됐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됐다.

노조파괴란 개별 노사관계처럼 회사와 노조의 일대일 대결이 아니다. 만약 일반적인 노사관계라면 노조가 투쟁에서 패배할지라도 노조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노조파괴란 노조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는 계획된 범죄다. 기업 틀을 넘어 정부 기관과의 공조 아래 진행된다. 노조를 파괴해서 얻은 이익은 노조사냥을 업으로 하는 컨설팅업체와 나눈다. 아니 그들에게는 노조가 사라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이익이었다. 정부도 노조라는 사회저항세력을 제거하고자 했다. 음모가 판을 쳤고 많은 노조가 사정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창조컨설팅'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노조파괴·노조사냥을 업으로 삼은 집단의 실체가 드러났다. 창조컨설팅은 회사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여타의 노무사, 노무법인과 차원이 달랐다. 창조컨설팅은 회원사만 수백 개에 이르렀고 이들이 내는 소위 자문료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훨씬 나중에 드러난 창조컨설팅 자문료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야당 의원이 창조컨설팅 금융거래내역을 뒤져 찾아낸 돈만 무려 82억원가량 된다. 드러난 금액만 이 정도다. 이 돈을 대가로 창조컨설팅이 파괴한 노조가, 자신들의 표현으로는 성과를 올린 사업장이 160여개에 이른다.

노조파괴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진행형인 이 고통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억울함이다. 바로 고용노동부와 검찰 같은 국가기구의 횡포다. 노조파괴에 맞서 저항하는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에 대해 주무관청인 노동부와 수사기관인 검찰은 과정에 개입해 불법을 중단하고 사측의 위법을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관료와 검사는 역으로 회사가 옳다고, 위법이 아니라고 자본의 편에 섰다. 지금 세상에 드러난 노조파괴 실상, 언론에 보도된 노조파괴 진실은 노동부와 검찰이 밝혀낸 것이 아니다. 유성의 민주노조와 조합원들이 글자 그대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알음알음 드러난 것이다. 그 대가 또한 고통스러웠다. 징계와 해고, 소송과 손해배상 가압류를 감수해야 했다. 한광호 동지가 우리 곁을 떠나야 했고, 사측 괴롭힘에 정신적인 낭떠러지에 몰린 조합원들이 출근길에, 작업 중에 돌연사하는 상황이다. 이 지경이 돼서도 여전히 노동부와 검찰이 자본의 편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할 때 그 좌절의 고통과 억울함은 커져만 간다.

창조컨설팅의 심종두는 진행 중인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본인이 간암 시술을 두 번 받고, 간이식 수술 또한 앞두고 있다. 노동부에서 노무사자격을 3년6개월이나 박탈해서 경제적·정신적으로 힘들다. 재판부가 이런 점을 고려해 선처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법정에서 태연히 이런 말을 하는 심종두를 보며 이자가 과연 반성이란 것을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노조를 파괴하고, 그 노조에 속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그 노동자와 연결된 가족의 삶을 파괴한 장본인으로서 자신이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일말의 고민이라도 해 봤다면,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태연하게 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검찰은 심종두에게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1천500만원을 구형했다. 그동안 저지른 노조파괴 범죄의 대가가 너무 초라하다. 노조는 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고 이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법이 보장한 노동자 단결을 파괴하는 것이 돈벌이로 둔갑하는 이 황당한 ‘창조’경제에 내려지는 처벌이 고작 1년6개월이니 법이 오히려 노조파괴 같은 범죄를 보장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서글픈 생각이 든다.

8월2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창조컨설팅을 심판하는 선고가 내려진다. 창조컨설팅이 파괴한 노조 조합원들을 모두 더할 수 있다면 아마 피해자수로는 한국 재판 역사에서 순위 안에 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 무거운 재판인 만큼 법원도 그 무게를 인식하고 정의를 실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도 수많은 현장에는 창조컨설팅의 아류들이 암약하고 있다. 이날의 재판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노조를 파괴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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