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불만이 쌓인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노동자 의견과 달리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면서다.

애초부터 예견된 일이다. 정규직 전환 범위·시기·방법을 논의하는 노·사·전문가협의회가 노동자 의견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구성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탓이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사·전문가협의회는 노사 당사자가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구성·운영돼야 한다. 공공기관은 사업장 내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협의기구 구성 계획을 공지하고 협의기구 참여를 희망하는 노동자·노조 등을 파악해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정 직종 노동자(노조)가 협의기구 구성 사실을 몰라 협의기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26일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노동자들은 “협의회 노동자대표 모집 사실을 공지받지 못했다”거나 “공지받았어도 노동자대표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출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예탁결제원, 용역업체가 노동자대표 선정

한국예탁결제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탁결제원은 이달 2일 용역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자회사 ㈜케이에스드림 설립을 완료했다. 용역계약 만기 도래에 맞춰 경비·환경미화를 비롯한 7개 직종 용역노동자 109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용역노동자들은 허탈함을 토로한다. 노동자 뜻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예탁결제원에서 일반경비로 일하는 용역노동자 A씨는 “사측이 특수경비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라며 용역 특수경비·일반경비 41명을 섞어 평가해 27명만 일반경비로 정규직 전환한다고 한다”며 “나를 포함한 14명은 평가에서 떨어져 용역 특수경비로 남게 됐다”고 증언했다. A씨는 “정부가 차별을 없애려고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건데 예탁결제원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노동자 일부만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또 다른 차별을 만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노·사·전문가협의회 구성상 문제를 지적했다. A씨에 따르면 용역업체 노동자들은 협의회 구성을 위해 노동자대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사측이 용역업체 관리자를 경비직군 노동자대표로 정했다는 통보와 함께 동의서 서명을 요구했을 뿐이다.

A씨는 “위에서 동의를 요구하니까 위계에 의해 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용역업체에 노조가 없어 정보가 부족한 데다 사측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노동자들은 뒤늦게 협의회 원천 무효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용역업체 관리자는 사측 요구에 부응할 가능성이 높다”며 “시설·미화직군을 비롯한 고령자가 많은 다른 직군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와 일부 경비노동자들은 최근 공공연대노조에 가입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노동자대표 선출과 관련한 내용을 용역업체에 설명했다”며 “용역·파견업체가 노동자 구성원들의 신상을 잘 아는 만큼 직군별 상황을 당신들끼리 협의해서 직군별로 뽑아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노동자대표 제대로 뽑는지 살펴봐야”

IBK기업은행 노·사·전문가협의회 노동자대표는 10명이다. 기업은행 정규직 대표 2명이 포함돼 있다. 비정규 노동자를 대변하는 8명 중 3명이 협력업체 관리자다.

배재환 노조 서울경기지부 기업은행지회장은 “노동자대표로 뽑힌 협력업체 관리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뜻과는 달리 기업은행 입장에 적극 동조하면서 기업은행이 이를 근거로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 지회장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대표단 구성 회의를 통한 선출 과정을 거쳤지만 회의 당일 사측이 휴가를 내주지 않아 노동자대표 선출에 참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많다”며 “사측이 처음부터 의도한 행위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초과학연구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영훈 노조 부위원장은 “기초과학연구원은 노동자대표 3명이 전부 정규직노조인 기초과학연구원노조 인사로 구성돼 있다”며 “사측이 전환 대상자들에게 기초과학연구원노조에 전환 관련 위임장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공공기관이 용역업체에 공지하면 업체가 알아서 노동자대표를 뽑는 방식으로 협의회가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며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거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대표를 뽑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공공기관이 협의기구 구성에 주도적으로 개입하면 이것 또한 오해를 낳을 수 있지만, 이것을 이유로 모든 것을 용역업체에만 맡기고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노동자대표가 제대로 선출됐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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