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태 기자
“저는 김앤장을 이길 돈도 없고 대기업을 이길 돈도 없어요. 저희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28일 오후 국회 본청 정의당 원내대표실. 정의당이 연 대기업 갑질피해 증언대회에 참석한 손정우(40)씨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손씨는 올해 4월까지 경북 경주에서 현대자동차 2차 전속거래 하청업체인 태광공업을 운영했다.

태광공업 제품을 납품받은 곳은 현대차 1차 하청업체인 S사였다. S사의 강제 단가인하에 시달린 끝에 손씨는 올해 4월 사업을 접기로 했다. 직원들 퇴직금이라도 주기 위해 S사와 인수합병(M&A) 협상을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S사는 느닷없이 협상을 중단하곤 손씨를 공갈혐의로 고소했다.

손정우씨가 협상을 하면서 “죽어서라도 직원들 퇴직금은 줘야겠다”고 말한 것이 공갈로 둔갑했다. 검찰은 징역 9년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S사 법정대리인은 김앤장이다.

S사 관계자와 김앤장 관계자는 이날 증언대회 행사장까지 들어와 손씨를 감시하다가 정의당 관계자에게 쫓겨났다. 손씨는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며 “저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장님들에게는 소송하지 말고 다른 살길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 잃은 딸 “아빠 같은 분들 도와 달라”

손씨에 이어 증언한 이는 지난 6월 부친을 여읜 남여경(30)씨다. 남씨의 아버지는 충남 천안에 있는 현대차 2차 부품업체 가진테크를 운영한 사업가였다. 1차 하청업체인 M사의 단가인하 요구를 참지 못해 단가인상을 요구했다.

M사는 곧바로 보복에 들어갔다. 다른 기업에 납품을 맡겼고 금형 반납을 요구했다. 물량을 달라고 비는 남씨의 아버지에게 지원금 명목으로 발행한 어음 상환을 압박했다. 결국 남여경씨의 아버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남씨는 “아빠처럼 어디선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을 위해 힘을 좀 써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증언대회 장소는 훌쩍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금형설비 탈취한 뒤 M&A 계약 파기

태광공업과 가진테크의 공통점은 원청이 갑질에 항의하거나 사업을 포기한 하청업체의 금형설비를 가져가려 했다는 점이다. 금형설비가 있어야 다른 하청업체를 찾아 생산을 맡기거나 직접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광공업의 원청은 M&A를 통해, 가진테크 원청은 다른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하청 이원화로 금형설비를 확보하려 했다. 아예 물리력을 이용해 금형설비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

역시 현대차 2차 협력업체인 엠케이정공은 불합리하게 상승한 단가로 회사 경영이 악화되자 1차 협력업체인 S테크와 M&A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S테크는 계약금을 지급한 다음날 직원 100여명을 동원해 강제로 엠케이정공의 금형설비를 가져간 뒤 M&A 계약을 파기했다. 원청은 특수절도와 사기혐의로 피소됐지만 눈도 깜짝 안 하고 있다.

주민국(38) 엠케이정공 대표이사는 “계약에 성공한 뒤 직원과 회식하면서 고용이 승계될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있는데 원청 직원들은 사복으로 신분을 숨긴 채 지게차까지 끌고 와 금형설비를 탈취했다”며 “무슨 영화에 나오는 깡패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도 온 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 시작 전 정의당 공정경제민생본부 발족식에 참가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한 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오늘 참석하신 분들께는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며 “하반기 국회에서 불합리한 하도급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의당이 비정규직을 위한 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출발했다면 이제는 중소 상공인의 정당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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