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규제완화 바람이 분다. 바람의 기원은 정부다. 소득주도 성장이 공격받을수록 정부는 샌드박스 같은 말을 붙인 규제완화에 더 가까이 간다. 여당은 한술 더 뜬다. 규제완화 밥상에 적폐라고 손가락질하던 박근혜 정부 정책을 올려놓았다.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우겠다며 재벌은행까지 눈감아 줄 태세다. 거대 여야 원내대표는 말이 잘 통한다. 합의했던 8월 임시국회 처리는 실패했지만 이제 곧 정기국회다. 불발탄은 언제든 터질 준비가 돼 있다. 규제완화법안을 왜 우려하는지 들었다.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가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

박근혜 정부가 당시 농업과 공업을 제외한 대부분 영역을 서비스산업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풀어 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추진했다.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대신 가지고 나온 게 규제프리존법이다. 이 법은 박근혜 정부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통해 재벌기업들한테 돈을 받고 추진해 ‘재벌 민원처리법’이라고 불린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적폐법안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 간 융합이 되는 모든 신제품과 서비스를 규제특례의 일차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병원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제정만 하면 언제든지 부대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했다. 국유재산도 언제든지 판매할 수 있는데 당장 지방의료원 매각이 우려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 또다시 규제완화 카드를 꺼낸 것이다. 서비스산업, 특히 의료 분야에서 규제를 풀어 기업들의 배를 불려 주려는 것이다.

규제프리존법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의료기기 전반에 대해서도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체외진단 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안 받아도 되도록 허용하고 원격의료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보험회사를 비롯해 의료기기를 만드는 재벌기업들에게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 돈이 나오는 곳은 환자 주머니거나 건강보험 재정이다.

우리는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라돈침대, 독성생리대 같은 사건들을 거치며 많은 고통을 겪었다. 기업들은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제품을 팔고도 모르는 체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산업육성을 위해 신기술의 우선사용·사후규제를 하겠다고 한다. 국민을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파기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

김용신 정의당 정책위의장

정부와 여당의 규제완화 추진의 첫 번째 문제점은 대선공약 파기라는 점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완화와 원격의료 확대, 개인정보보호 규제완화는 모두 대선공약을 파기하거나 후퇴시킨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규제완화가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큰 틀에서 추진해 온 것들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반대했던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모두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뿌리로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국가차원에서 추진한 의료·농업·노동 분야 규제완화를 박근혜 정부가 수입한 것이 기간제법·파견법 개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의료민영화를 규제혁신 5법에서 삭제한다지만,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큰 틀은 유지하려 하고 있다.

지역별로 규제를 푸는 아베노믹스의 국가전략특구법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법, 문재인 정부의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지역특구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베는 산업경쟁력 강화법으로 기업별 규제를 완화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대 국회에서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업활력법)이 통과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규제완화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신기술과 서비스를 우선허용한 뒤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을 해치면 사후규제한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한다는 것인데, 하나 마나 한 얘기다. 규제원칙과 개인정보 보호까지 더불어민주당 법안에서는 규제프리존법보다 규제완화 폭을 넓힌 조항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실패한 정책은 실패한 정권을 만든다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강훈중 한국노총 교육선전본부장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4년 12월28일 사용자단체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관계부처 차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규제 기요틴(단두대) 민관합동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한상의·전경련·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총·무역협회 등 사용자단체가 제출한 규제개혁안을 논의하고 추진방향을 결정했다. 당시 규제개혁안 중 노동관련 내용에는 △기간제 사용기간 규제 완화 △파견업종 및 기간 규제 완화 △근로시간단축 규제 유연화 △업무 성과 부진자에 대한 해고요건 확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경영상 해고요건 완화 △임금피크제 법제화가 포함됐다. 박 정권이 추진한 2대 지침과 노동법 개악안은 그렇게 사용자단체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고 포장했다. 그 정권은 노동계의 거센 투쟁과 촛불시민에 의해 무너졌다.

얼마 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규제혁신 법안을 발의했다. 여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제활성화를 위해 규제혁신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어째 전 정권에서 한 얘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정부가 혁신하려는 규제관련법은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 국민의 생명·안전에 관한 내용이거나 환경보호, 개인정보 보호, 경제력 집중 방지,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위한 내용들이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려는 규제혁신법안에는 전 정권에서 추진했던 규제혁신의 망령이 숨어 있다. 우리는 전 정부가 규제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지침을 남발하고 비정규직 확대법안을 발의하는 등 반노동 정책으로 일관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제도 살리지 못하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재벌대기업의 배만 더 불리다가 국민에게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 하필이면 촛불혁명으로 무너진 정권의 실패한 정책을 왜 다시 들고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실패한 정권의 정책은 다시 이 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촛불정신 파기하는 규제완화법안 폐기하라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민주노총이 광화문에서 들었던 촛불을 이해찬 대표가 취임하는 날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다시 들었다. 이해찬 대표가 추진하고자 하는 민생경제연석회의는 이런 규제완화법과 함께 갈 수 없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대기업 청부 입법’으로 규정한 규제프리존법을 포함해 3당 교섭단체가 강행처리하기로 합의한 일련의 법안들은 민간자본의 규제특례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규제특례는 국민 안전과 관계된 의료법 등 기존 규제법안을 무력화하는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사전허용·사후규제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 기업이 원하면 언제든 사전에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사후에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신제품 테스트 목적으로 국민을 시험·검증 대상으로 삼고 기업이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안전성 판단을 하도록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우리는 이미 가습기 살균제, 라돈침대 등 시민의 생명과 안전성에 심각한 폐해를 가하는 사건들을 경험했다. 지금 국회가 규제혁신을 명분으로 처리하려는 관련법 일체는 보건의료와 정보통신을 포함해 산업 분야 전반을 겨냥한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 정보인권과 연계된 민감한 법안들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졸속합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해찬 대표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은 적폐정당이 추진했던 규제완화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할 권리보장,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등 촛불정부에 맞는 개혁입법 처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서 물꼬 트면 은산분리 원칙 무너져
정명희 금융노조 정책실장

정명희 금융노조 정책실장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은산분리 원칙은 무너져서는 안 된다. 재벌들의 요구에 따라 이미 증권사와 보험사·카드사 등 2금융권은 산업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정부는 자본시장 육성과 중소기업들이 쉽고 저렴하게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를 허용했다.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은 주주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본시장에서 주식이나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보다 오히려 이익잉여금을 기업 내에 유보해 놓거나 주주권이 희석되지 않도록 가능한 은행차입을 이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폐단을 알았기에 대선 당시 “금산분리로 재벌이 장악한 2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며 재벌개혁 추진을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여당은 대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밀어붙이고 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이미 대기업에 약속을 한 것인지, 아니면 현 정부가 공약을 뒤집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재벌개혁이 물 건너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투자자-국가소송 중인 론스타 사태, 수많은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한 저축은행 사태, 동양증권 사태 등을 잊었는지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강둑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만 구멍에서 시작된다. 정보통신기술 기업에 한해 인터넷전문은행 보유를 허용한다고 하지만 이는 곧 은산분리 원칙 폐기로 이어질 것이다. 주먹으로 구멍을 막았으니 강둑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정부의 논리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