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추석연휴가 끝났다. 모두 고루 즐거워야 할 명절이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고달픈 시기가 되곤 한다. 추석연휴 직전 소식지를 받기 위해 동네 한 여성단체에 방문했다. 이런 저런 담소와 차를 나눈 후 헤어지며 활동가들과 “성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나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때마침 추석 인사로 “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라는 인사말을 담아 주변 분들과 나눴다는 것을 떠올렸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평등하게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명절 내내 곱씹어 보게 됐다.

평등함이 아니라, 아무 일 없는 일상처럼 추석연휴를 맞고 싶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명절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 중 누군가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이가 있다면, 과연 추석연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어땠을까. 기존의 일상과는 다르게 구성되는 명절이 가져다준 시간,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누군가의 빈자리가 가져다줄 허함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사회적 재난.”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 메시지에서 산업재해를 정의하며 던진 말이다. “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그 자체로 기존 정부와는 노동재해를 인식하는 태도와 입장이 확연히 다름을 드러낸 말이다. 대통령이 직접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에 메시지를 전한 것이 1968년 행사 시작 이래 처음이었다고 하니, 그에 따른 기대도 한층 컸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는 노동현장에서 안타까운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게다가 ‘위험의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이들 태반이 협력업체·하청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은 산업재해를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 정부의 인식과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동재해 예방에 있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4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누출로 인해 발생한 협력업체 노동자 3명의 사상사고(2명 사망, 1명 의식불명)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더 큰 문제는 화학물질 누출과 노출로 인한 사고가 해를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고, 그때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고 있다는 데 있다. 이에 경기도에서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며 활동에 나섰다. ‘왜 삼성 문제에만 유난이냐’는 일부의 곱지 않은 시선이 있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왜 유독 삼성에서만 사고가 끊이지 않냐”는 대책위의 문제제기에 삼성을 포함해 관계당국이 사고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지역사회와의 소통 이행 요구 등에 있어 제대로 답변하며 해소해 나가야 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여러 가지 의혹을 낳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사고의 단면들에서 사태가 매우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늑장 신고’ 논란 이후 CCTV 영상으로 공개된 삼성 자체 소방대의 구조 모습은 실로 삼성에 안전대책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한 번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언론으로 알려진 것만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와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의 사상피해(1명 사망), 2014년 3월 수원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 지하에서 발생한 소방설비 오작동에 의한 이산화탄소 누출과 협력업체 노동자의 죽음, 2015년 11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황산 누출과 이로 인한 협력업체 노동자의 화상사고 등 반복적인 사고에서 삼성과 관계당국이 그동안 무엇을 교훈으로 삼았는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추석연휴 중 일부 언론이 경기도와 소방당국 등이 작성한 '합동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는데, 보고서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설비가 없다고 기재돼 있어 삼성의 부실점검 혹은 허위보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산화탄소 누출사고에 대비한 안전교육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듯 사고가 필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부실한 안전관리가 확인되고 있다.

누군가 죽음과 질병에 내몰리는 노동재해가 일상이 되고 있는 지금,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노래가사는 더욱 아프고 절실하다. ‘사회적 재난’인 산업재해, 과연 그에 걸맞게 대응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반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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