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우리는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일해서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타인이 사용하거나 이용하고, 나 또한 누군가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노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노동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무역이 대표적이다. 시민들이 출퇴근길에 겪는 불편을 감수하고 파업 중인 지하철·버스 노동자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이 나에게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연대의식’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결된 노동 중에서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경비노동자들이다. 한국 노동시간은 최근 정부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도입해 강제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다. 대개 24시간 격일제로 일하는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실태가 거론될 때도 이들의 사례가 빠지지 않는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에서 마련한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 가이드’도 마찬가지다. 가이드는 제대로 된 휴게시설이 없어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이후 나온 조치다. 가이드 적용 대상이 바로 경비노동자들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아파트 주민)가 직접 갑질 당사자가 돼 가슴에 못을 박기도 한다. 경비노동자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으로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장시간 노동, 교대근무, 열악한 작업환경, 업무 스트레스 등이 가중되다 보니 뇌심혈관계질환으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단골 고객'이 되곤 한다.

우리 아파트를 지켜 주는 그 분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아니 그 전에 그분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일하면서 무엇을 힘들어 하는지 정도는 알면 좋지 않을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사단법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에서 화성시와 화성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일과 건강에 관한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노동과 그들의 고충을 이해해 보자는 뜻에서 집배노동자와 경비노동자들을 섭외했다. 특히 화성 향남은 신도시 건설로 아파트가 많아,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에게 한층 관심을 갖게 됐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을 만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때마침 인근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내방하는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분의 도움으로 주변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들과 자리를 마련해 사업의 취지를 설명하고, 단지별로 경비노동자 몇 분씩을 모아 두 차례의 ‘교대근무와 건강, 뇌심혈관계질환’이라는 주제의 사전교육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게 됐다. ‘밤을 잊은 노동과 건강에 관한 토크콘서트’라는 제목으로 경비노동자의 일상과 노동, 어려움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며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경비노동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야간순찰인데,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관리사무소·용역업체가 함께 의견을 모아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야간순찰 없이 수면을 취하게 된 걸 말이다. 노인회가 수면공간으로 노인정을 제공하는 등 단지 주민들의 배려가 뒷받침됐다. 그 과정에서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시간을 줄였지만, 새벽 3~4시에 일어나 순찰을 돌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매우 컸다. 준비 과정에서 확인된 이 사례는 토크콘서트에서 발표됐고 다른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 부녀회, 노인회 등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아직 토크콘서트를 진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켜봐야겠지만, 다른 아파트의 경비노동자들도 사례를 적용하면 밤에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실 토크콘서트를 준비하며 지역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의 이런 상황을 잘 몰랐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막상 자리를 마련해 얘기를 나눠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 아파트에 사는 분이라면 오늘 저녁 퇴근길에 경비실에 들러 물어보자. “아저씨,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서 순찰 도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야간순찰 안 도는 아파트도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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