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포스코에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출범했다. 포스코에는 1988년 만들어진 기업노조가 현재까지 존속해 있지만 조합원이 9명에 불과한 유령노조와 같았다. 기업노조는 회사 노무정책을 관철시켜 주는 노무관리조직에 불과했다. 삼성에 이어 사실상 무노조 경영의 맹위를 떨쳤던 포스코에 현장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소식은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50여년 동안 포스코의 수직적이고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는 직원들의 자율성과 자부심을 철저히 파괴했다. 내막을 들어 보니 프로축구 강제동원, 봉사활동 실적관리, 임원 의견에 댓글달기, 산재 책임의 개인 전가 및 은폐, 생산장애에 대한 자아비판식 반성회, 휴일 없는 호출정비, 임원 및 부서장 현장 방문시 청소하기, 관리자 막말 등 전근대적인 행태들이 끝도 없다.

포스코에 새 노조가 출범한 다음날인 9월17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출근길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만나 새 노조와 관련해 “(언제 만날 지) 계획은 없다”며 “아직 설립이 안 된 것으로 아는데 (설립 이후에는) 당연히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무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순기 포스코 노무협력실장은 직책보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행위유형을 열거하고, 그와 같은 부당노동행위로 오해받지 않도록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다음날 노무협력실장이 직접 직책보임자들을 모아 놓고 부당노동행위로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육까지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장이 새 노조와의 대화 가능성을 언급하고 노무책임자가 부당노동행위 예방교육을 하는 등 포스코 노사문화에 변화를 기대하게 하는 조짐이 보이는 듯했다. 이제 ‘포스코가 달라지려나?’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 노조가 출범한 지 1주일, 부당노동행위 예방교육을 한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9월23일 추석연휴 첫날에 포스코 노무협력실 직원들이 포스코지회를 비방하고 기업노조(비대위)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던 사건 현장이 발각됐다. 새 노조 간부들이 제보를 받고 포스코 인재창조원 건물의 한 사무실을 찾아가 새 노조를 부정하고 기업노조(비대위)를 지원하기 위한 내용이 담긴 문건과 노무직원 수첩을 확보했다.

새 노조 와해 준비를 위한 노무협력실 직원들의 추석연휴 사건 이후 회사가 취한 조치를 살펴보면 기대감을 주던 앞선 행위들과 완전히 이율배반적이 아닐 수 없다.

회사는 추석연휴 사건 당일 새 노조 간부들이 가져간 문건과 수첩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노조간부들을 무단침입과 문서탈취 파렴치범으로 경찰에 신고하고 언론플레이에 나섰다. 그날 저녁부터 경제지와 지방언론들은 ‘사무실 무단침입과 문서탈취’ 사건으로 도배를 해댔다. 18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가정보원의 대선 댓글공작 제보를 받고 국정원 여직원이 소재하고 있던 아파트를 찾았을 때 스스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기 위해 아파트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던 여직원이 거꾸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이 자신을 감금했다"며 의원 등을 감금죄로 고소했던 사건과 어찌 이렇게 판박이일까.

다음날 MBC를 포함한 여러 중앙 언론매체들이 포스코 노무협력실에서 작성한 문건들은 새 노조를 와해하고 기업노조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잇따라 보도하자 회사는 다음과 같은 해명자료를 뿌렸다.

“추석연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노사관계 상황을 고려해 노사신뢰 증진과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방안 마련이 시급해 휴일근무를 했던 것입니다. 업무공간인 사무실을 무단으로 침입하고, 더구나 명절연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 수행을 위해 고생하는 동료직원들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것은 우리 회사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법적인 행위를 한 직원들은 (중략) 사규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계획임을 밝혀 드립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새 노조를 부정하고 기업노조를 지원하기 위한 범법행위를 “노사신뢰 증진과 건전한 노사문화 정착방안 마련”으로 둘러대는 뻔뻔함에 할 말을 잃게 된다.

회사는 노무협력실 직원들이 작성한 노조와해 문건 발각 이후 반성은커녕 노조를 감시하고 관리하던 부서인 본사 노무협력실 산하 노사문화그룹 ‘노정섹션’을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려 인원을 증원했다. 포항제철소에 없던 노정섹션을 신설해 인원을 배치하고, 광양제철소에는 기존 노정섹션 인원을 확대했다. 또 ‘부서별 그룹활동 지원비용’으로 1인당 매월 5만원을 한도로 올해 말까지 36억원(추산치)의 예산을 추가로 배정하고, 직책보임자인 주임·파트장·부공장장의 직책수당과 직책활동비를 갑작스레 수십만원씩 인상하는 등 새 노조 활동에 제동을 걸기 위한 물량공세에 나섰다. 그동안 조합가입 홍보를 위해 새 노조 간부들이 출근 선전활동을 하던 장소에서 8일부터 회사 안전요원과 관리자들이 참여하는 안전캠페인을 하겠다고 공지했다. 조합 홍보활동 장소에 알박기를 하거나 조합가입 홍보활동을 감시하며 견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포스코의 일련의 조치는 노사화합과 신뢰 증진과는 정반대 길이다. “포스코 직원(노무협력실 직원)들이 불법적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최정우 회장의 생각이 이를 뒷받침한다. 포스코가 91년 안전기획부(현 국정원)와 합작해 노조를 와해시켰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주적인 노조를 불온시하고 적대하며 와해하거나 무력화할 대상으로 삼는 시대착오적인 노조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명심하길 바란다. 노조를 와해하려는 행위는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유린하는 반헌법적 조직범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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