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희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법의 문구 하나하나는 우리 삶을 규정한다. 하나 마나 한 말이지만 매번 공장들을 다닐 때마다 피부로 느낀다. 어느 날 한 대기업 디스플레이 사업장을 방문했더랬다. 커다란 디스플레이 공장 안에는 대략 수백 개 하청업체들이 있다.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다 파악하지도 못한다. 필자는 이 수백 개 하청업체들 중 서너 사업장과 산업보건의사로 계약을 맺고 상담 일을 한다. 그런데 두 개 업체를 방문했을 때 안전보건 담당자들이 공통된 말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인원 줄어요. 원청에서 협력업체들 보고 100인 이하로 관리하래. 그래서 한 달 전부터 100인 미만으로 인원 떨어트리고 있어요.”

원청의 명령은 그 세계에서는 법이다. 영세한 사업장의 사장님들은 다 원청의 명령대로 아무 이유 없이 무고한 노동자들을 적게는 대여섯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을 퇴사시키고 있었다.

원청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뻔하다. 법적 규제나 의무 조건들을 피하기 위해서다. 100인이 넘으면 산업안전보건법상 규제와 의무사항이 늘고 챙겨야 할 서류들도 많아진다. 개개 사업장도 힘들지만 원청 안전보건팀도 골치가 아파진다. 최근 정부가 집중적으로 산업현장에서의 국민 안전과 생명을 챙기려는 전향적 시도가 커졌기에 다급하게 그런 처방을 내린 것이다.

언급한 두 하청업체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대기업 내부 도급업체들이 대부분 그렇듯 2년마다 업체명을 변경하는 것이다. 회사 인원수 조절부터 업무 상당부분에 대한 원청의 직접 지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조금 복잡하지만 이는 모두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같은 비정규직 관련법을 비켜 가기 위한 꼼수다. 원청과 하청 사업주는 각각 직접고용 의무 회피, 정규직 전환 의무 회피의 이득을 보는 가운데 피해를 보는 건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올해 2월 초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보호대상을 ‘일하는 사람 모두’로 확대한다고 전부개정 이유를 밝혔다. 그에 걸맞은 정의나 규정을 놓치고 있어 비판을 받았지만, 취지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문제가 있다. 특히 필자는 도급과 위험의 외주화에 관해서는 부족함을 느낀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제출된 이후 노동계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도급 금지 개정안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법에서 도급을 금지한 것은 도금 작업, 수은, 납 또는 카드뮴의 가공 작업, 그리고 제조 사용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위험물질을 제조·사용하는 작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물질’ 위험 대비 위주의 포지티브리스트 나열 방식은 극명한 한계를 지닌다. 불과 몇 해 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의 사망 사고가 사회에 경종을 울리지 않았나. 그는 위험한 물질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도급 직원이 되는 순간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려드는 지하철 차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돼 버렸다. 조선업은 어떤가. 용접과 도장시 페인트 유기용제 외에는 유해한 물질 노출은 없지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의 선박을 만들어 내는 작업 특성 자체에서 오는 위험의 수준은 어마어마하다. 현재 법에서는 이들 모두 도급으로 넘기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 법의 구멍이다.

도급으로 넘어가는 순간 원청의 안전보건관리자는 짐을 던다. 안 그래도 위험하고 꺼리는 일인데 내 책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법에서 원청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다고 해도 도급 덕에 어깨에 짐 하나 더는 것은 동일하다. 일단 다른 회사 소속의 노동자가 되는 순간 한 다리 건너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했다. ‘공정하게 성과를 보상받는 일터’ ‘사회안전망을 통한 든든한 일터’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열심히 뛰겠다고 선언했다. 베테랑 관료 출신인 이재갑 장관은 누구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보다 훨씬 큰 그림과 문제의식을 안고 법의 실질적 이행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문구 하나하나가 현장과 일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끼치는 구체적인 여파를 경험하고 느껴보지 못한 관료 출신이라는 게 아쉽다. 그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일하는 사람 모두’를 아우르겠다고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이다. 누구도 산업안전보건법의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제외가 없어져야 한다.

법의 구멍은 현장에서 곧바로 노동자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길 바란다. 국회 입법만이 방법은 아니다. 시행령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다. 이재갑 장관이 취임 초기 이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태도를 보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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