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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노동자가 2018년을 사는 법] 화장실 못 가고, 앉지 못하고, 쉬지 못한다

기사승인 2018.10.18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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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연맹 건강실태 조사 결과 발표 … "원청에 감정노동자 보호의무 부과해야"

   
▲ 서비스연맹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2천806명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 <서비스연맹>
때맞춰 화장실에 못 간 탓에 방광염에 시달린다. 생리대를 제때 갈지 못해 피부질환에 걸리기 일쑤다. 휴게실이 있어도 못 쓰게 하니 있으나 마나다.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한다. 10명 중 1명은 유산을 경험했다. 2018년을 사는 서비스 판매노동자들의 오늘이다.

서비스연맹(위원장 강규혁)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2천8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현장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과학대) 연구팀이 올해 1월부터 10개월간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 2천806명의 노동환경과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내놓았다. 판매노동자 노동환경은 띄엄띄엄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앉지 못하고, 화장실에 못 가고, 쉬지를 못했다. 갖가지 병을 달고 살았다.

◇"의자 달라" 벌써 10년=판매노동자들에게 의자는 오아시스와 같다.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백화점 노동자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마시는 냉수 한 사발, 한겨울 한파 속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라고 표현했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노동실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8년께다. 당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수개월간 백화점을 상대로 '의자배치'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했다. 그로부터 10년, 얼마나 바뀌었을까.

실태조사에 응답한 노동자의 27.5%(771명)는 "일하는 곳에 직원용 의자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의자가 있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의자가 있어도 사용할 수 없다"는 답변이 37.4%(1천50명)나 됐다. 판매노동자 3명 중 2명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한다는 얘기다.

쉬지 못하니 병이 따라왔다. 지난 1년 새 하지정맥류·족저근막염을 앓아 치료를 받은 판매노동자가 각각 428명(15.3%)·223명(7.9%)이었다. 연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했더니 20~49세 여성이 하지정맥류·족저근막염 치료를 받은 비율은 2013년 기준으로 각각 0.6%, 0.5%에 그쳤다.

◇판매노동자는 왜 화장실에 안 보일까=백화점 화장실과 엘리베이터에서 직원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다수 백화점이 직원 근무수칙으로 고객 시설물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스컬레이터·주차장·화장실은 접근금지 구역이다. 판매노동자들은 직원 전용 화장실을 써야 한다. 김명신 LVMH노조 부위원장은 "백화점 지하에 있는 직원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데 거리가 멀고 공간도 협소하다"며 "일하는 도중에 다녀오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조사에서 지난 1주일 새 일하다 화장실을 가지 못한 경험을 한 판매노동자는 절반을 웃도는 1천677명(59.8%)이다. 가지 못한 이유로는 "매장에 인력이 없다" "화장실이 멀다" "화장실 공간이 부족하다" 등의 답변이 나왔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목이 마를까 봐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대답이 42.2%(1천185명)로 나타났다. 방광염 치료를 받은 노동자는 20.6%(578명)였다. 응답자 중 여성노동자(2천708명)에게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있다"는 답변이 39.9%(1천81명)로 조사됐다.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피부질환이 생긴 판매노동자는 17.2%(466명)를 차지했다.

◇원청이 아니면 노동환경 개선 어렵다="저희는 매장에서 쉴 수가 없어요. 의자도 없고, 물도 못 마시고. 그래서 휴게실이 꼭 필요해요."

연구팀과 인터뷰를 한 면세점 판매노동자 ㄱ씨의 말이다. 판매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이탈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쉬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 달 새 휴게실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는 41.9%(1천176명)에 불과했다. 휴게실 의자가 부족하거나 면적이 좁아서, 거리가 멀어서 이용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휴게실에 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인근 카페나 직원식당, 비상계단·복도를 쉼터로 활용했다.

오랫동안 서서 일하고 쉬지 못하기 때문일까. 응답자 중 임신한 적이 있는 여성(1천404명)에게 유산 경험을 물었더니 11.4%(160명)가 "있다"고 답했다.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에게 감정노동자 보호의무를 지우는 방향으로 정부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8일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감정노동자 보호법)은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업주 조치 내용을 담고 있다. 고객응대 업무지침을 마련하고 건강장해 예방교육을 하도록 했다.

이성종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백화점·면세점이 자발적으로 협력업체나 간접고용된 판매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면 좋겠지만 법이 강제하지 않으면 이행하지 않는다"며 "개정안은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사업주에게 보호의무를 부과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김승섭 교수는 "18세기 산업혁명 초기 요구사항으로 나왔을 법한 화장실 이용·휴게시설 구비·의자 앉기를 2018년 말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번 조사 결과가 작은 변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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