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57·사진)은 대통령이 참여하는 노사정 8자 회의를 제안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비판받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노동계의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고 노사정 신뢰를 구축하려면 대통령 참여와 새로운 대화 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1년. 네 차례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만들어졌다.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마련된 것이다. 김주영 위원장은 “더디지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사회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최근 임시(정책)대의원대회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노사정대표자회의와 산하 위원회는 계속 참여하기로 했다. 김주영 위원장은 민주노총 정책대대가 정족수 부족으로 유회된 것과 관련해 “중요한 시간이 그냥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고 유감스럽다”면서도 “민주노총 말대로라면 이미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니 이대로 (경사노위를) 출발해도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경사노위) 준비기구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며 “사회적 대화의 한 주체로서 빠른 시일 내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소집을 요구해 사회적 대화 진행 여부를 결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경사노위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 사회적 대화·200만 조직화와 관련한 고민을 들었다.

“빠른 시일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열어 결정하자”

- 지난해 9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안한 지 1년이 흘렀다. 민주노총이 최근 정책대대에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어떻게 봤나.
“우리 사회의 중요한 시간들이 그냥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쉽고 유감스럽다. 한국노총 위원장으로서 지난해 노동계가 꺼내기 어려운 사회적 대화를 먼저 제안하고 1년을 기다렸다. 올해 1월부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네 차례 열며 사회적 대화를 위한 준비를 했다. 올해 5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전부개정됐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준비기구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경사노위 인적구성에 몇 개월씩 걸리는 상황에서 (출범을) 더 이상 멈출 수 없다.”

-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지만 노사정대표자회의와 산하 위원회는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말대로라면 이미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으니 그대로 (경사노위를) 출발해도 된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노사정대표자회의와 각종 위원회) 참여 자체가 모순이다.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위원회들이 운영되고 있는데 액면 그대로 보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경사노위를) 시작하면 된다고 본다.”

- 향후 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전개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노총은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 불참했다. 한국노총 역시 고민이 많았다. 상황이 어려워도 사회적 대화는 지속돼야 하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끝까지 참여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년 최저임금을 10.9% 인상했다. 민주노총이 참여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대화의 한 주체로서 빠른 시일 안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소집을 요구하려 한다. 차기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서둘러 열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거기에서 이후 사회적 대화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임의기구인 노사정대표자회의 결정사항은 힘을 얻을 수가 없다.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는 이유다. 이제 경사노위 체제로 들어가야 한다.”

“최저임금법 개악처럼 당사자 없는 논의는 모두에게 피해”

- 지난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를 제안하면서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에 사회적 대화를 하자고 요구했는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사이 우리 사회 양극화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안전망도 갖추지 못한 상태다. 하루빨리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보완하는 것이 우리 사회 책임 있는 주체들의 역할이다. 지금도 늦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첫해에 무너진 노사정 간 신뢰를 회복하고 올해부터는 회복한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 공감대를 얻는 시급한 의제부터 논의하자고 제안했는데…. 사실 1년 동안 혼자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 ‘내가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나’ 생각하기도 했다. ‘사회적 대화를 말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입을 닫게 되는 과정이었다. 올해 1월 첫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하고 법 개정까지 더디지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왔다. 좀 더 진전되지 못해 답답하다. 책임 있는 주체들이 이대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 이대로 있으면 된다. 반면 우리 사회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래선 안 된다.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정기훈 기자

- 사회적 대화의 기본은 노정 간 신뢰다. 얼마나 회복됐다고 보나.
“신뢰가 깊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여야가 합의해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처리하지 않았나. 최저임금법 개정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로 풀 수 있었다. 노사정 간 대화가 진전되지 못해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가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빌미를 줬다. 당사자가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 보장 특별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가 발족을 준비 중이다. 시급한 현안을 꼽자면.
“국민연금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은퇴자·고령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하지 않은 장년층뿐만 아니라 청년까지 관심도가 높다. 1988년 국민연금 출범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이 현재 45%까지 내려왔다. 또다시 40%로 낮추겠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더 내고 덜 받고 늦게 받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젊은층에서 국민연금 불신이 높아졌다. 소득대체율을 적어도 50% 이상으로 높이고 국가가 지급을 보장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문제도 시급한 현안이다. 노동계가 그토록 외친 ‘해고는 살인이다’ 구호가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나.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문제들을 조속히 다뤄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해 의견차가 크다. 국회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주체 간 이견이 첨예한 문제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힘 있게 끌고 나가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 했던 약속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한다. 지금은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전신인 신한국당이 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한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다. 정부가 책임지고 주도해야 한다.”

- 올해는 최저임금 수난의 해인 듯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더니 업종별·지역별 차등지급 주장까지 나온다.
“업종별·지역별 차등지급은 맞지 않다. 적어도 최저임금이 1만원 이상 됐을 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에 내세운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국정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한다.”

- 올해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 ‘200만 조직화 원년’을 선포했다. 성과가 있었나.
“미조직 사업장 50만명, 중간노조 30만명, 내 사업장 비정규직 20만명, 이렇게만 조직한다면 200만 조직화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해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에 노조를 만들었고, 안랩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구조조정을 철회시켰다. 또 포항지역철강노조를 설립해 포스코와 포항지역 철강노동자 조직화를 진행 중이다. 임기 동안 조합원이 7만명 정도 늘었다. 조직화 진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노동자 권리를 되찾고 소득 양극화를 일정 부분 해소하는 의미 있는 결과가 있었다.”

- ‘내 사업장 노동자 100% 조직화’ 사업을 설명한다면.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인식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자기 사업장 비정규 노동자에게 눈을 돌리고 관심을 가지는 조직이 늘었다. 인식 전환을 바탕으로 조직화 사업이 활성화되면 성과가 나올 것이다. 처음으로 비정규연대기금도 조성했다. 10억원 가까운 돈이 모였다. 비정규연대기금을 종잣돈으로 현장에서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다.”

- 다음달 17일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현장순회를 한다. 어떤 내용을 다루나.
“노동현안과 현장 바람을 이야기하고 들으려 한다. 현장 목소리를 리얼하게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음달 17일 열리는 한국노총 노동자대회 핵심 요구인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단축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를 포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를 함께 요구할 예정이다.”
 

정기훈 기자

“노동부 장관, 노동자 위해 욕먹을 수 있어야”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했다. 당부할 말이 있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나 2대 지침(공정인사·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성과연봉제 폐기 등에서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 정규직화·최저임금 1만원·노동시간단축을 보면 순탄치가 않다. 보수언론은 정부가 노동계 목소리만 듣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노동계도 답답하다. 크게 진척되는 것이 없다. 초기에 국정과제들을 잘 이행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갑 장관이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들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노동존중 사회를 여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적어도 노동부 장관은 노동자들을 위해 때로는 욕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타임오프 개정·임금저하 없는 노동시간단축·비정규직 정규직화·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한 노동현안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

- 벌써 임기 반이 지났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고 취임과 동시에 조직화에 매진했다. 사회적 대화와 조직화에 성과가 완전히 없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의 사회적 대화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다. 조직화는 한국노총이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 할 문제다. 남은 시간 더 열심히 뛰겠다. 먹고사는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 안전망 강화, 국민연금 개혁, 200만 조직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사회적 대화는 사회 주체들이 힘 있게 임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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