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에서 박수경 간호사가 웃으며 환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간호사 이직률이 심각하다. 하루 12시간 일하면서 밥은 10분 만에 '마셔야' 하는 극한의 노동조건이 간호사들을 병원 밖으로 내몬다. 하지만 광주 천주의성요한병원은 다르다. 환자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위압감을 느낄까 봐 의사 가운도, 간호사 근무복도, 환자복도 모두 없앤 병원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양심에 거리낌없이 환자를 충분히 돌볼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환자가 아닌 '손님'으로 대접하는 병원

지난 16일 광주송정역에서 택시를 타고 “천주의성요한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네? 어디요?" 택시기사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 되물었다. 그러더니 "아! 요한병원 가시는구나" 하며 다시 한 번 묻는다. "피부과 가시게?"

광주시민들에게 천주의성요한병원은 '요한병원'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피부과가 워낙 유명해서 광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천주의성요한병원이 정신건강전문병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병원 어디에도 '정신병원'이라는 간판이 없다. 예민한 환자들에게 '병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압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보호병동은 '안집', 개방병동은 '샘터'로 부른다. 병원에서 '환자'라는 말도 들을 수 없다. 환자가 아닌 '손님'으로 맞기 때문이다.

"어떤 손님(환자)은 '왜 환자가 아니라 손님이라고 부르냐'고 역정을 내기도 해요. 집에 손님이 오시면 정성껏 모시잖아요? 한 분 한 분을 극진하게 섬기겠다는 의미에서 손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백성호 부원장(루카 수사)의 말이다.

성요한병원의 독특한 철학을 이해하려면 설립 배경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요한병원을 설립한 이들은 1958년 아일랜드에서 광주로 온 5명의 천주의성요한의료봉사수도회 수사들이다.

수사들이 따르는 성자 요한은 병자와 간호사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요한이 태어난 1495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려 밀라노 한 성당에서 붓을 들었을 때다. 병이 나면 "악령을 내쫓아야 한다"며 사람을 두들겨 패던 시절이었다. 요한이 마흔 넘어 종교적인 '회심'을 했을 때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라며 스페인 왕립정신병원에 가뒀다. 그곳에서 처참한 환자들의 생활을 목격한 요한은 의료진을 대신해 환자들을 극진하게 돌보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을 나온 그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병원을 차렸다. 버려진 환자들을 거둬 깨끗한 환경에서 사람답게 생활하며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병원 입구에는 성 요한의 정신이 새겨져 있다.

"우리의 사명은 성별·인종·피부색·종교에 대한 차별 없이 도움을 청하러 오는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손님(환자) 중심, 인간화된 서비스, 전인적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 온 노력을 기울인다."
 

▲ 병원 입구에 새겨진 천주의성요한병원 사명. <보건의료노조>

웃음소리 가득한 호스피스완화병동

병원 3층에는 호스피스완화병동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박수경 간호사와 폐암으로 85일 전에 입원한 이아무개 할머니가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길어야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할머니 표정이 누구보다 밝다. 박수경 간호사가 연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도 덩달아 크게 웃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호스피스병동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밝았다.

올해로 21년째 근무 중인 김안순 간호사는 “호스피스병동은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며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호스피스·완화 치료는 죽음이 아니라 남은 삶에 주목한다. 간호사 업무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병동과 다르다. 이곳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정리를 돕는다. 화해하지 못한 가족이 있다면 이곳으로 불러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준다. 이별을 두려워하는 가족들에게는 이겨 낼 힘을 준다. 김안순 간호사는 “일반 병동 간호사들은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편안해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매번 죽음의 문턱을 넘는 이들과 함께하려면 보람이나 성취 같은 감정과 다른 마음앓이를 견뎌야 한다. 성요한병원 호스피스병동 간호사들은 1년에 몇 차례 ‘소진회의’를 열어 서로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래서 한 번 호스피스병동에 들어선 간호사들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 편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간호사 12명 중 20년 이상 근속자가 4명, 10년 이상 근속자가 3명이다. 윤동원 보건의료노조 천주의성요한병원지부장은 “호스피스병동만이 아니라 병원 전체가 그렇다”며 “보통 20년 이상은 일해야 ‘병원 밥 좀 먹었다’고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간호사 평균 근무연수는 5.4년, 전체 이직률은 12.4%다. 신규간호사의 1년 내 이직률이 33.9%로 숙련된 장기근속 인력이 부족하다. 성요한병원의 장기근속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는 의사 가운도 간호사 유니폼도 환자복도 찾아볼 수 없다. <보건의료노조>

의사도 간호사도 환자도 동등한 ‘안집’과 ‘샘터’

성요한병원 뒤편에는 수도원이 있고 그 옆으로 초록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안집’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인다. 밖에서 보는 안집은 여느 건물과 차이가 없지만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서너 개 출입문을 거쳐야 하는데 그때마다 윤동원 지부장이 출입문 안전장치를 풀었다 잠그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문이 잠겼는지 흔들어 확인했다. 잠긴 문에서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에도 안전출입문이 설치돼 있다. 이런 안전장치는 이곳이 정신과 보호병동임을 알려 주는 유일한 증표다. 병동 내부는 가운을 입은 의사도,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도, 환자복을 입은 환자도 없다. 평상복 차림의 사람만 북적인다. ‘의료인 명찰 패용 의무화’에 따른 신분증이 없었다면 아마도 누가 환자인지 의료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병원을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게 병원쪽 설명이다.

'안집'에서는 환자 1명당 사회복지사·간호사·의사 3명이 팀을 이뤄 진료계획을 세운다. 인지능력이 불분명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사는 ‘인권의 보루’가 된다. 보호병동 환자 35명을 돌보기 위해 20명의 직원이 필요한 이유다.

개방병동인 '샘터' 역시 따뜻한 분위기였다. 병실 입구에는 203호 같은 숫자 대신 희망·겸손·세싸·앙굴라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다. 내부에서도 보통 입원실과 달리 의료기기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아늑해 보이는 침대와 앙증맞은 크기의 1인용 쇼파가 있고 바닥에는 경쾌한 핑크색 카펫이 깔려 있다.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도 살가웠다.

19년째 성요한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간호사는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스스로가 치료도구가 돼야 한다”며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토로했다.

“매일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돼요. 누구나 어두운 부분들이 있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부분들을 찾아서 건강하게 바꿔 줘야 해요. 쉽지 않은 일이죠.”

▲ 보건의료노조

성요한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직원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성요한병원은 1984년 전국 정신간호학과 교수를 대상으로 ‘정신보건 전문가과정’을 개설했다. 98년에는 보건복지부 정신보건전문요원 수련기관으로 선정됐다. 지금도 전국에서 교육을 받으러 올 정도로 탄탄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배운 대로 실천하기다.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성요한병원의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병원에서 인권이 이슈가 되기 전부터 저희는 손님(환자)들의 인권을 우선에 두고 일했어요. 교과서에서 배운 지침과 현장에서 하는 실무가 틀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잖아요. 간호사로 양심에 거리낌없이 일할 수 있어 매일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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