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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세습, 귀족노조

기사승인 2018.10.2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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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신분·재산·직업·기예(技藝)·생활양식 및 각종 규범 등이 혈연·지연·학연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행위.” 국어사전에서는 ‘세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고용’을 붙이면 ‘고용세습’이 된다. 뭔가 어색하다. ‘고용’이 과연 세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어마어마한 권세나 부려야 세습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적합하지 않은가? ‘권력세습’ ‘부의 세습’ 이런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고용’이라는 것이 그만큼 귀한 것이 됐는가?

“혈통·문벌·재산·공적 등에 의해 일반 사람과 다른 정치적·법적 특권을 부여받은 상류계급, 또는 그런 계층에 속한 사람.” ‘귀족’의 정의다. 수년 전 당시 여당 대표가 ‘귀족’ 앞에다 ‘노조’를 붙여 ‘귀족노조’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경제위기를 성실히 일만 한 노동자에게 돌리는 그의 무지를 더 논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그저 필자의 호기심은 ‘고용세습’에서 가진 의문과 비슷하다. 과연 ‘노동조합 조합원’이 ‘귀족’이 될 수 있는가? 귀족으로 불릴 만한 재산이 있다면 굳이 노동자로서 살아가겠는가? 조합원이 된 이유는 노동자로서 더 충실히 살아가기 위한 순수한 목적이 아닌가? 나름의 결론은 ‘고용세습’도 ‘귀족노조’도 모두 바른 말이 아니다. 조악한 조어일 뿐이다.

최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채용 논란이 한창이다. 서울교통공사가 발단이 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자들 중 상당수가 친인척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귀족노조’의 ‘고용세습’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자리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지 않는다. ‘몇백 대 1’에서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이겨 내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이 허탈해 하는 모습에 깊이 공감한다. 이참에 지적된 문제점을 바로잡고 공정한 고용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귀족노조’의 ‘고용세습’ 문제로 몰아가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의도가 숨어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흔들기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조합을 공격하기 위한 악의적인 프레임이라고 봐야 한다. 순수성이 한참 떨어진다. 오래되고, 많은 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세습’과 ‘귀족’이 얼마나 많은가. 점점 심각해지는 기업·부의 세습에는 의도적으로 눈감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알듯 5천만 국민을 이용한 기업·부의 세습 사건도 현재 진행 중이다. 정작 나라의 근간마저 흔드는 이 같은 범죄사건에는 침묵하던 이들이 교통공사 사건이 나자 ‘이 때다’하고 나서는 모습이라니. 측은할 정도다. 적어도 앞으로는 ‘경영권승계’가 아니라 ‘귀족 재벌의 세습’이라고 쓰라.

언론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들이 하는 보도만 봐서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이미 확실한 ‘채용비리’라고 못 박고 있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규범을 위반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기사는 본 적이 없다. 분명한 채용비리라면 아마도 형법상 업무방해나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위 법률 중 어디에 위반되는지 정도는 분석해야 한다. 실정법 위반이 아니면 어느 수준에서 위반인지는 밝혀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운, 그래서 불만이 가득한 노동현장을 파고들어 막연히 ‘사실인 양’ 하는 보도는 안 된다. 위법이다. ‘사실보도’가 언론의 제1 기능 아니던가. 그러나 일부 보수매체는 그 반대이거나 의도적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 사건의 경우 ‘정규직 전환 정책 이전에 이미 정규직으로 채용된 수’가 쉽게 확인되고 ‘87%가 친인척이라는 주장’도 거짓이 이라는 게 분명해졌지만 바로잡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분위기를 틈타 한술 더 뜨는 약은 정치인들도 보인다.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을 매도하고 있다. ‘고용세습 조항’ 운운하며 비난한다. 그런데 대부분 단체협약의 구체적인 내용과 적용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무조건 자녀에게 그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면 이에 근거해 실제 자녀들이 채용된 사실 정도는 있어야 그 주장을 믿을 수 있지 않겠나.

“조합원이 사망할 경우 유가족에게 채용을 배려한다.” 이 단체협약에 따라 필자는 남편이 우울증으로 사망하자 회사 식당에서 조리원으로 채용된 사건을 경험했었다.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열악한 상황에서 노사가 맺은 위와 같은 합의라면, 유족의 생계를 위한 복지 차원이라면, 그리고 유가족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배려해 주는 정도라면 어떤 법에 위반됐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를 합의한 노조가 ‘귀족’인가? 이것이 고용의 ‘세습’인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김형동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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