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진심으로 ‘공공기관 채용비리’에 맞서 싸우는 것일까? 그렇다면 강원랜드 등에서 확인된 채용비리를 반성하고, 공공기관 채용과정 전반을 조사하며, 그들이 반대했던 ‘채용비리 근절법(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다시 통과시키자고 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이 싸우고 싶어 하는 것은 ‘채용비리’가 아니라 ‘노동조합’인 것 같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 노조가 개입했고 그것이 채용비리로 이어졌다고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들이 폭로한 사안들은 하나둘씩 거짓임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지하철노조 전 위원장 아들의 특혜채용 기사는 본사 1급 처장을 전 노조위원장으로 둔갑시킨 것이었고, 인천공항지역지부장 아내의 고속승진·특혜채용 등도 언론사가 왜곡을 인정하고 정정보도를 했으니 ‘노조 개입’ 주장은 실체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은 물러서지 않는다. 진보정당 출신이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업체에 입사해서 노조를 만들었고 무기계약직 전환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농성을 했으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근속과 임금을 제대로 보장하라고 요구했다고 폭로한다. 거짓기사로 드러난 앞의 노조 채용비리와 연이어 기사화되거나 이야기되니 마치 큰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보면 노조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일 뿐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헌법에서 보장한 노조의 역할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오로지 ‘노조혐오’에 찌든 사람만이 이런 노조활동을 문제 삼고 노조가 채용에 개입한 증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짓기사나 노조혐오 의식에만 있지 않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자체를 ‘채용비리’인 양 몰아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상시업무는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공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울교통공사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그 원칙을 어기고 많은 업무를 외주로 떠넘겨 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위험과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에 시달렸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젊은 노동자 김군이 사망하면서 위험의 외주화가 일하는 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며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김군의 동료들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웠다. 인천공항 비정규 노동자들도 2013년 파업할 때부터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고, 불완전하지만 잘못된 고용형태를 조금씩 되돌리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경쟁에서 승리한 자의 전리품이 아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취준생’을 걱정하며, 공공기관은 모두가 바라는 ‘꿈의 직장’인데 치열하게 노력하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이 쉽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취준생’들이 긴 시간 삶을 저당잡히고 절망하는 것은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정규직 일자리를 쟁취할 수 있는 것처럼 왜곡된 인식이 생긴 것이다.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가 공부 잘하는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과 시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있어야 공공성을 지킬 수 있기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 ‘청년취업자’에게도 희망이 생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7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식당노동자를 ‘찬모’라고 칭하고 인천공항 보안경비직은 ‘걸을 줄만 알면 입사한다’며 정규직 전환을 문제 삼는다. 서울지하철 안전업무 노동자들이 필기시험을 보지 않은 것을 문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고, 차량을 정비하고, 모터카를 운전하고, 보안검색을 하고, 탑승교를 운전하고, 식당에서 조리를 하고, 보안경비를 하는 이들은 ‘필요한 일’을 하는 이들이다. 최선을 다해 인천공항과 지하철의 안전을 지킨 이들이다. 이들 중 누구도 안정된 노동, 제대로 된 노동조건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 ‘정규직’은 노동자의 보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직무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에 찌들어 있는 이들만이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문제 삼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채용비리’를 없애기 위해 투명하게 조사하고 관련자를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채용비리’를 빌미로 차별과 불안정함 속에서도 묵묵히 일했던 이들의 권리 찾기를 방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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