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은 지난 5월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시간단축이 임금 저하나 노동조건 후퇴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연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화를 추진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용지표 악화'로 코너에 몰린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시작으로, 노동시간단축 유예기간 부여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까지 경영계 요구사항을 곶감 빼먹듯 하나씩 내주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불신이 쌓여 가고 있다.

29일 정부·노동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사회적 대화로 근로기준법상 최대 3개월인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1년까지 연장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과정에서 노동계 반발로 홍역을 치른 정부·여당은 이번에는 "사회적 대화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떤 경로의 사회적 대화인지 불분명하다. 지난 24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최대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등 연착륙 방안을 연내 만들어 내겠다"고 말한 게 전부다. 25일에는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가 "노사 단체 의견을 충분히 듣고 협의하는 것을 사회적 대화 수준으로 해 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언급했지만 정작 방점이 찍힌 쪽은 '연내 입법화'로 보인다. 다음달 정기국회에서 입법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합의' 모양새만 갖출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노동부가 다음달 초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노동시간단축 연착륙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제안할 것 같다"며 "TF를 만들어 몇 번 모이도록 한 후 합의가 안 되면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사회적 대화 외피를 쓰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노동계가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고용지표 악화에 몰려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우회전하는 같다고 분석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가 검토해 볼 수 있는 정책이긴 하다"면서도 "당면한 일자리 문제와 민생문제의 심각성을 노동계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게 먼저인데, 자꾸 여론에 밀려 다급하게 시장화로 가면서 (재계에) 하나씩 내어 주는 방식으로 가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를 무늬만 사회적 대화로 포장하거나 노동계를 건너뛰고 국회가 독자적으로 처리한다면 앞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안에서의 사회적 대화도 과거와 다를 바 없이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전문가는 "노동계가 탄력적 근로라는 말 자체에 큰 경계심을 갖고 있다"며 "의견수렴을 통해 합의해 가야 하는데, 정부가 기정사실화하고 나서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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