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민주노총 법률원에는 다양한 경로로 상담 요청이 들어온다. 노조를 통해 상담 요청을 받기도 하고, 민주노총이나 법률원의 전화를 통해 상담 요청을 받기도 한다. 다양한 경로만큼 주제도 다양하다. 최선을 다해 답변을 하고자 하지만 상담이 끝나고 나면 내담자에게 미안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하기 어려운 상담, 답답한 마음은 알지만 법률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려운 상담 등이 그렇다.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한 상담은 특히나 미안하고 안타깝다.

직장내 괴롭힘은 무어라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부당한 전출과 해고, 성희롱과 성차별, 왕따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업장에서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이 존재함에도, 우리의 법과 제도는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무지하다. 직장내 괴롭힘이 무엇인지, 예방과 구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우리의 사회와 법은 한 번이라도 고민해 봤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희롱·차별에 관해 규정한 것 외에는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로서는 가해자나 회사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민법 750조·756조·760조)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 지점에서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려면 청구권자, 즉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위한 모든 요건을 증명해야 한다. 과연 직장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왜 그러한 일이 생겼는지, 어떠한 방법으로 괴롭힘이 이뤄졌는지. 때문에 상담 과정에서 가해행위와 그 위법성에 관한 사실을 꼬치꼬치 캐묻게 된다. 아무리 조심을 하고 또 조심을 해도, 피해자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도록 하는 것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와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증거가 없는 경우(대부분 그렇다) 또는 괴롭힘이 교묘한 경우에는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소송으로 가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말하더라도, 결국 다시 괴롭힘을 한동안 당해야 한다는 것이 된다. 괴롭힘이 교묘해도 그렇다. 가령 회사에서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형태의, 이른바 ‘은따’와 같은 괴롭힘이 있는 경우 피해자가 가해행위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증거 문제를 넘어가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은 남는다. 법원은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배상(위자료)에 대단히 인색하다. 오랜 시간 아픈 기억을 되풀이해 어렵사리 불법행위를 증명하더라도,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위자료 금액은 크지 않다. 많은 상담에서, 피해자들에게 ‘실익’이 적을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사실 집단이 무리지어 약자를 괴롭히는 현상은 낯설지 않다. 많은 연구에서도 학교나 직장과 같은 후천적 집단에서 무리짓기와 갈등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는 않으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테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직장내 괴롭힘이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것은 누적된 갈등과 괴롭힘에 대해 사회 구성원들이 보내는 SOS 신호가 아닐까.

조금만 생각하면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 손쉽게 예방할 수 있다. 많은 피해자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노조는 직장내 괴롭힘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양한 이유로 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손해배상 등 사후적 구제수단은 노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노동 3권의 실질적 보장과 새로운 제도, 고민을 통해 SOS 신호에 적극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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