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대표단 100인이 전태일 열사 48주기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파견법 기간제법 폐기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공동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대통령과의 만남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노동자 100명이 자신의 이름과 하는 일을 쓴 플래카드를 들고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섰다. 이름과 하는 일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약자로 취급받는 비정규 노동자라는 점이다.

이들은 쉽게 잘리고 차별받는 현장 사례를 소개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직접 만나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해 보자고 했다. 민주노총이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4박5일간 ‘비정규직 그만쓰개’ 공동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약속 지키지 않아 해고"=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규모와 종류만큼이나 많은 차별이 존재한다고 외쳤다.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웃도는 1천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직접고용·간접고용·특수형태근로·플랫폼 노동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밝혔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잡월드다. 잡월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직업선택의 꿈과 기회를 제공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다. 그런데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직업군인의 세계를 소개하는 이주용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달 600여명의 청소년에게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꿈과 호기심을 심어 주는 저는 용역업체 변경으로 매년 해고되는 비정규직입니다. 자괴감이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것을 보고 우리도 직접고용돼 제대로 된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지만 꿈은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잡월드는 이씨를 비롯한 강사직군의 자회사 전환을 추진 중이다. 노동자 140여명은 이달 8일 마감된 채용서류 접수를 거부했다. 이대로라면 31일부로 전원 해고된다. 이주용씨는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 불이행으로 우리가 해고되는 것”이라며 “이것이 노동을 존중하는 나라다운 나라인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LG 작업복 입고, LG유플러스 상품 설치하지만"=불법파견 온상인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스파크 변속기를 만드는 진환씨가 발언했다.

"제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우리가 착취받고 차별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바로 옆의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절반의 임금을 받기 때문입니다. 한국지엠에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며 투쟁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아직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LG유플러스 간접고용 노동자 제유곤씨는 "LG마크를 단 작업복을 입고, LG유플러스 고객을 만나 LG유플러스 상품을 설치하고 수리하는데도 우리는 LG 소속이 아니다"며 "LG유플러스가 매년 20~30%의 협력업체들을 갈아치우는 탓에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기업이 직접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4년부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있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신정웅씨는 "하루 8시간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서서 일해야 하고, 지금까지 수십 번의 화상을 입었지만 산업재해는커녕 연고도 못 바르고 일한다"며 "노동기본권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지만 단 한 차례도 노동부 관리·감독을 받은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과 비정규 노동자들은 16일까지 대검찰청·청와대·국회 앞에서 정부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와 문화제를 열고 캠핑농성을 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청와대에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 노동자 100명의 면담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내용의 문서를 제출하고 31일까지 답변을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비정규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이 끝난 뒤 청와대로 행진했다. 경찰이 청와대에 면담요구를 전달하려던 노동자들을 막아서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일부 노동자가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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