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죽음 이후 유족은 진상규명·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와 교육청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올해 2월 교육부가 학습중심 현장실습을 내세워 선도기업을 선정한다고 밝혔지만 선정·운영 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현장실습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한 도제학교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실정이다. 11월19일은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하던 고 이민호군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현장실습대응회의>가 이민호군 1주기를 추모하고 남은 과제를 되짚는 차원에서 연속기고를 보내왔다. 5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이수정 공인노무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이런 훈련을 2년씩이나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지난 봄 전북의 한 공고에서 만난 고3 학생 여럿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이 학생들은 2학년 1학기부터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다니고 있다. 도제학교는 2013년부터 시작한 ‘일학습병행제’를 특성화고에 도입한 것이다. 정부에 따르면 일학습병행제는 ‘독일·스위스 식 도제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설계한 교육훈련제도’다. 도제학교는 2015년 9개교로 시작해 2017년 기준 194개교가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도제학교 운영방식에 대해 ‘학습근로자’가 학교와 기업을 2~3일 단위 혹은 한두 달 단위로 오가면서 이론과 실무를 익히고, 학교와 기업은 공동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교육훈련 과정을 마련해야 하며, 기업에서는 현장교사가, 학교에서는 도제담당 교사가 이론과 실무교육을 책임진다고 설명한다. 정부안대로 ‘체계적인 교육훈련’이 도제학교에서 진행 중이라면 학생들의 평가는 달랐을 것이다. 현실이 어떻기에 학생들은 이렇게 박한 평가를 한 것일까.

첫째, 도제학교 참여기업에 교육훈련 프로그램과 현장교사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서류에는 프로그램도 현장교사도 있지만 학생들의 말은 다르다. 용접을 배우러 갔는데 용접봉도 제대로 잡아 보지 못하고 2년이 흘렀다는 학생(전북 ○○공고), 전공 분야 달인이 되고 싶었는데 청소의 달인이 됐다는 학생(경기 ○○공고), 자동차 정비하는 걸 옆에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학생(부천 ○○공고), 볼트 10킬로그램이 담긴 주머니를 팰릿에 옮기는 일만 온종일 했다는 학생(전남 ○○공고) 등 이런 사례는 수두룩하다.

둘째, 도제학교 참여기업 중 훈련역량을 갖춘 기업보다 부족한 인력을 채우는 게 시급한 회사가 많다. 제도시행 첫해 정부에서 제시한 기업 기준은 ‘상시노동자 50인 이상 사업장’ ‘직종 관련 기업현장교사 확보’ ‘신용등급 우수기업’ 등이었다. 담당 교사가 방과 후와 주말을 반납한 채 기업을 ‘발굴’하러 다니느라 격무에 시달리지만 기준을 두루 갖춘 기업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이유로 2016년에는 상시노동자수를 20인 이상으로 완화했다. 강소기업과 혁신기업은 5인 이상 등으로 예외인 경우가 많아 기업 기준이 무의미해졌다. 학교에서는 제도 취지보다는 학생을 ‘받아 주는’ 기업을 찾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지경이다. 전남에서 도제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현황을 분석해 보니 20인 이하 사업장이 2016년 72개 기업 중 14개 기업(19.4%)이었다가 올해는 151개 기업 중 52개 기업(34.4%)으로 늘었다. 신용등급 미달 단계인 C등급 이하 사업장도 참여하고 있다. 이런 조건의 기업에서 도제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셋째, 한국은 독일·스위스처럼 ‘명장’을 대우하는 사회가 아니다. 열여섯 살부터 ‘학습근로자’가 돼 기업 실무를 익히고 NCS자격증을 취득해서 졸업하자마자 취업한다 해도 그에 걸맞은 대우는 기대할 수 없다. 일찌감치 배우는 건 회사가 나이 어린 직원을 대하는 방식, 우리 사회가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을 어떻게 차별대우하는지다. 일과 학습을 병행한다는 건 환상이고 어떤 것도 만족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배울 뿐이다.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따로 진학 준비를 하거나 다른 진로를 모색하느라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현실이 이렇기에 정부 홍보와는 다르게 참여 학생들의 평가는 매우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전남의 한 특성화고가 도제사업을 반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 반갑다. 2015년 시범사업부터 참여했던 학교에서 이런 결정을 했다니 정부는 그 이유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도제사업을 반납한 이유는 첫째 재직자 중심으로 설계한 도제학교를 무리하게 학교에 적용해 학교 교육과정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점, 둘째 기업이 도제사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학생들 훈련에 부담이 많아 참여를 꺼린다는 점, 셋째 도제학교가 늘면서 기업마다 수용할 수 있는 학생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또 한 과가 도제반과 비도제반으로 나뉘어 마치 우열반 같은 위계를 만드는 점이나 수업시간은 기업에 내준 채 교사는 행정업무에 치이는 주객전도 현상 등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1년 전 고 이민호 학생이 현장실습을 한 회사는 강소기업이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 513개, 근로감독 기준 167개를 위반해 사고가 발생한 그 음료공장은 교육부 기준대로라면 도제학교에 참여할 때 우수기업으로 선정된다. 강소기업 혹은 도제학교 참여기업은 별도 심사 없이 ‘선도기업’으로 당연 인정된다. 오류투성이다. 안전도 훈련역량도 담보되지 않은 기업에 ‘선도기업’ 간판만 달아 준다고 ‘학습중심 현장실습’이 가능할까? ‘학습’은 기업에 맡기고 교육당국은 계속 ‘인력 파견업체’ 역할만 할 것인가? 무늬만 학습중심 현장실습, 또 다른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인 도제학교를 내세워 여론을 호도하는 일은 그만 멈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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