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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양난에 빠진 시내버스

기사승인 2018.11.1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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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명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

   
▲ 손명호 변호사(법률사무소 함께)

어릴 적 내 꿈은 택시기사였다. 엄마 손을 잡고 가끔씩 택시에 오를 때면 뒷자리 가운데는 항상 내 차지였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마치 내가 운전대를 잡은 양 거리를 누볐다. 그런데 맙소사 그 꿈은 301번 시내버스를 탄 후 바뀌었다. 301번 기사님은 승객들이 버스에 오를 때마다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화답하는 승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인사를 멈추지 않았다. 미처 화답하지 못한 승객들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등굣길에는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하시라는 응원을 보냈고, 하굣길에는 오늘도 정말 수고 많으셨다는 위로를 잊지 않았다. 투철한 직업의식에서 나오는 그 다정함과 여유를 닮고 싶었다.

비록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버스기사님들을 자주 뵙는다. 부당하게 징계를 당하거나 임금을 떼이고, 심지어 회사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경우를 본다. 지자체와 회사는 경제와 효율을 이유로 운행시간과 배차간격을 빡빡하게 잡는다. 배차담당자는 출발할 때 앞차와의 간격을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도로는 철도와 달리 예측하기 어렵다. 그때그때 도로상황과 교통상태에 따라 운행시간이 달라지고 배차간격은 벌어진다. 한번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면 그 사이에 기다리는 승객들은 더 많아지고, 더 많아진 승객들을 태우고 내리느라 간격은 더 벌어진다. 기사들이 운행시간을 지키고 배차간격을 유지하려면 안간힘을 써야 한다. 손님이 없어 보이면 모른 척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하고, 교통량이 적은 새벽이나 밤 시간에는 몰래 신호를 위반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야만 겨우 운행시간과 배차간격을 지킬 수 있다.

그렇게 운전하다 보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 급출발과 급제동을 하다 보면 승객들은 넘어지고, 신호를 위반하다 보면 사고가 난다. 하루 8시간 이상 매일 운전하는 업무 특성상 교통사고는 더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회사는 어김없이 징계를 내린다. 신호위반도 교통사고도 다 징계사유가 된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인해 보험료가 상승했다면서 보험료 상승분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제기한다. 나이테처럼 쌓인 징계전력은 어느덧 해고사유가 되고, 나이 든 기사들은 회사 앞에서 더 움츠러든다. 일해서 번 이득은 회사가 취하면서, 일하다 생긴 손해는 노동자가 다 물어내라고 한다.

징계를 받고 소송까지 당한 마당에 더 이상 맘 졸이며 위험하게 운전할 수 없다고 결심한다. 신호를 지키고 급제동은 하지 않기로 한다. 손님이 없어도 일단 정차하고, 안전을 위해 정류장에 더 밀착해 정차하기로 한다. 덕분에 시민과 승객들은 더 안전해졌다. 대신 운행시간이 늘어났고 배차간격도 벌어졌다. 그러면 회사는 어김없이 징계를 내린다. 전에는 잘만 운행하다가 갑자기 느려졌으니 고의로 운행을 지연했단다. 그저 교통법규를 지키며 도로상황에 따라 성실히 운전했을 뿐인데도 징계를 받는다. 빡빡한 운행시간을 지키려면 시민과 승객의 안전을 지킬 수 없고, 시민과 승객의 안전을 지키려면 징계와 해고를 피할 길이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시내버스다.

고단한 청소노동자의 발이 돼 준 6411번 기사님도, 한 소년에게 꿈을 심어 준 301번 기사님도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내버스는 유일하게 안전벨트가 없는 대중교통이다. 제 아무리 근로계약이라도 공동체에서 부여받은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침해할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와 운수회사는 버스노동자와 시민의 호소에 귀 기울여 지나치게 빡빡한 운행시간과 배차간격을 현실화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을 통해 고의·중과실이 아닌 교통사고에 대해 함부로 징계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시민과 노동자의 발, 시내버스는 보다 안전하고 다정하게 우리 곁을 지켜 줄 것이다.

손명호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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