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16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면(23쪽)을 읽었다. 가장 눈길을 끈 기사는 ‘확신할 수 있는 미래를 기다리는 청춘들’이라는 제목의 사진과 사진해설이다. 사진에는 앳된 청년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고, 그의 뒤에는 ‘학력학벌차별 stop’ ‘불안한삶 stop’ ‘대학중심 stop’ ‘입시경쟁 stop’이라는 손피켓을 든 청년들이 서 있다. 손피켓에는 또 ‘2018 대학입시 거부선언’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기자는 이렇게 사진설명을 했다.

“저는 지난해 대학에 떨어지고 올해 재수를 하다 입시를 거부한 20살 ‘청춘’입니다. 한 선생님이 제게 ‘대학에 가지 않고 하루살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 것이냐’고 물으시더군요. 하지만 ‘그 하루살이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시간들이 당장 내일조차 확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능을 거부한 ‘투명가방끈’(정식명칭은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수능일인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저마다 수능을 보지 않은 이유를 발표했습니다.”

그 기사 바로 위에 “‘범죄 민족주의’의 유혹”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었다. 기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배타주의의 효과적 전술은 상대를 악인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흉악범들로 치부하는 게 가장 좋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걸 제대로 이용한다. 그는 미국에 오는 멕시코인들은 성폭행범이라고 했다. 범죄집단을 응징한다며 더한 범죄를, 전쟁을 저지르는 게 배타적 민족주의의 심각한 결말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1일 1차 대전 종전 100돌 기념식에서 ‘악령이 다시 깨어나고 있다’고 경고한 이유다. 한국 민족주의에도 거짓 선동의 유혹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 사회 한편에서는 수능시험을 거부함으로써 ‘체제’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처럼 대놓고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저항감을 가진 훨씬 많은 청년들이 있다. 그들의 아우성은 대개 입 안에서 멈춘다. 그래서 소리가 없다. 다른 한편에는 범죄민족주의 집단인 성조기·태극기부대가 있다. 기자는 한국 민족주의에도 거짓선동의 “유혹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그들의 거짓선동이 활개를 치고 있다.

거짓선동이 이처럼 활개 치는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 ‘체제’에 저항감을 가진 낙오자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소외된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체제’가 무시하기 때문이다. ‘체제’라고 하면 독점재벌과 파쇼국가 같은 것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들에 대립하는 척하지만 실은 그것들을 방조하는, 체제 내 세력인 ‘충성스러운 왼팔’도 포함된다. 그들은 이 약자들, 낙오자들의 목소리를 이것저것으로 쪼개서 소수자의 목소리라고 간주하고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청년·여성·노인·저학력자 같은 이 약자들을 다 합치면 이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고 대다수다.

이 청년들이 염원하는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해야 오는가. 낙오자를 만드는 ‘나쁜 세상’이 왜 만들어지는지 그 원인을 잘 알아야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멀쩡한 인간을 낙오자로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법칙이고 철의 법칙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축적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수단이 없는 무산(無産)자인 임금노동자를 만들어 낸다. 자본가계급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초당적으로 출산율 제고를 추진한다. 이처럼 자본 축적은 곧 프롤레타리아 축적이다. 그와 동시에 자본은 이윤증식을 위해 부단히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며 고용노동자를 실업자로 전락시킨다. 4차 산업혁명도 그 하나다. 자본의 축적은 또한 산업예비군이라는 이름의 잉여인간의 축적인 것이다.

사람을 임금노동자로 만들었으면 일을 시켜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완전고용이 이뤄지면 노동자들은 기업에서 쫓겨나도 갈 곳이 널려 있으므로 배짱을 튀기며 단결해서 자본에 대항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동에 대한 높은 착취도를 만들 수 없다. 그러므로 자본계급은 노동자 지배와 착취를 위해서 산업예비군을 없애지 않고 계속 유지시킨다. 동시에 현역과 예비군이, 현역은 현역끼리, 예비군은 예비군끼리 하나로 단결하지 못하게 경쟁시킨다. 이런 구조적 조건하에서는 개인적으로 열심히 ‘노오력’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능력이 뛰어난 소수를 빼놓고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다수는 노력해도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제는 고의로 대량의 낙오자를 만들어 내고, 이 낙오자들을 내일조차 확신할 수 없는 불안에 허덕이게 만든다.

이런 불안한 상황은 지금 세계적으로 매우 심화돼 있다.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심각한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가 생명력을 다해 역사적 대(大)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조성되고 있다. 문제는 ‘체제’며 대안은 다른 체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체제를 유지시키려 하는 정치가 계속될 때 ‘범죄 민족주의’라는 악령이 불려 나온다. 미국 트럼프에 이어 유럽 여러 나라에서 파시즘의 악령이 깨어나고 있다. 하지만 악령이 깨어난다고 경고하는 마크롱 역시 결과적으로 악령이 깨어나는 것을 방조하고 있다. 그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대신 유지시키는 정치를 하고 있는데, 이런 체제유지적인 정치로는 낙오자를 없애기는커녕 줄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진보언론은 ‘개혁’을 파시즘의 대안으로 계도(啓導)해 왔다. 하지만 민주든 진보든 ‘변혁·혁명’ 아닌 ‘개혁·개량’은 옳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사회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향한 마크롱이 극우 민족주의자 르펜에게 쫓기고 있는 프랑스를 반면교사로 삼을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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