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규제를 피하려고 파견업체와 꼼수 도급계약을 맺었다가 법원에서 파견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허가받은 파견업체가 위장도급을 했을 때도 무허가 파견업체에 의한 파견처럼 불법에 해당한다고 본 첫 판결이다.

22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재판장 박종택)는 지난 15일 산업은행에 “용역계약을 맺고 임원 운전업무를 했던 노동자들의 근로계약 실질이 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산업은행은 ㄷ사와 2007년부터 도급형식의 용역계약을 맺고 운전업무를 위탁했다. 원고 8명은 산업은행 임원과 지점장 운전기사일을 했다. 이들의 입사시점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다양했으나 해고일은 2016년 4월30일로 대부분 같았다. 산업은행과 ㄷ사가 2015년 8월 차량용역 변경계약을 체결한 탓에 이들의 근무기간은 2년이 채 안 됐다.

법원은 ㄷ사가 근로자파견허가를 받았고 운전업무가 파견허용업무여서 적법한 파견계약을 맺을 수도 있었는데도 산업은행이 도급계약을 맺은 이유를 파고들었다. 법원이 찾은 이유는 '파견법 규제 회피'다. 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사용사업주에게 직접고용 의무를 지우고, 차별처우도 금지하고 있다. 산업은행에 직접고용된 운전기사들이 있어서 원고들이 차별시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다분했다. 도급계약은 이런 규제에서 사용사업주인 산업은행을 자유롭게 해 줬다.

입사일이 다르지만 해고일이 같은 이유는 소송 때문이다. ㄷ사 다른 노동자들이 2016년 산업은행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내자 또 다른 소송을 우려해 산업은행이 ㄷ사와 맺은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법원은 “산업은행이 적법한 파견계약을 체결할 수 있음에도 용역계약을 체결해 파견법 규제를 받지 않는 불법적 이익을 누렸다”며 “도급계약을 이유로 직접 무기계약직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경우보다 인건비 절감 이익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은행이 원고들의 운전업무 제공기간이 2년 미만임을 이유로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 적용을 회피할 의도에서 용역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보인다”며 “파견법에 따라 원고들이 ㄷ사 입사일에 산업은행의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했으므로 고용 의사표시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사건을 대리한 김기덕 변호사는 “파견업 허가를 받아 놓고 명목상으로는 도급계약의 외관을 꾸민 경우라면 파견법 규제를 회피하려는 의도인데 이런 형태는 무허가 파견사업주로부터 파견을 받은 것과 동일하다는 점을 확인한 최초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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