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전자-반올림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에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 김지형 조정위원장, 황상기 반올림 대표가 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삼성전자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중재판정 이행합의 협약식'을 열면서 삼성 백혈병 문제가 일단락됐다. 황유미씨 사망으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지 11년 만에 삼성전자 사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그런데 삼성전자와 반올림 사이를 중재한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협약식에서 "국가와 사회가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무엇을 다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자"며 "정부를 대표해 고용노동부가, 국회를 대표해 환경노동위원회가 시즌 2를 이끌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날 협약식은 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 운동 '시즌 2'의 예고편이었다. 시즌 1에서 '지나가는 행인' 정도로 비중이 낮았던 안전보건공단이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의 수혜자가 되면서 시즌 2에서는 유망주로 떠올랐다.

전자산업안전보건센터 세워지나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수용한 중재판정에는 재발방지·사회공헌을 위해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 500억원을 조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금 출연은 삼성전자가 하고, 사용처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이 정하는 공공기관에 기탁한다. 전자산업안전보건센터 설치 등 산업안전보건 인프라 구축에 기금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양측은 기금을 안전보건공단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의 경우 단발성 안전보건 정책이나 사업으로는 기술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며 "삼성과 반올림측 의견을 들어 평택이나 수원에 전자산업 안전보건을 관리할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 하청노동자까지 산재예방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당장 실무팀을 구성해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내년 6월30일까지 기금 출연을 마무리하면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올림도 시즌 2를 준비 중이다.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전자산업이 워낙 거대하고 어디서 어떤 물질이 쓰이는지 정부도 잘 포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새 물질의 유해성이 검증되기도 전에 쓰이다 사라지는 일이 허다하다"며 "메탄올로 실명한 하청노동자들의 비극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전자산업에 만연한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자에게 전가한 산재입증 문제부터 해결해야"

정부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조정위원회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권고'를 내놨다. 조정위는 "국민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은 헌법에 담긴 국가와 사회공동체 모두의 책임"이라며 "노동건강권의 적정한 보장을 이뤄 내기 위해 산재 판정에서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전적으로 노동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적정한 보상의 실현에 막대한 장애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사 대표와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도 '남은 숙제'를 강조했다. 그는 "애초 산재보상이 그토록 어렵지 않았다면 우리 노동자들과 가족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산재보험제도와 근로복지공단을 개혁해 산재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보상 이르면 다음달부터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보상은 실마리가 풀린 듯하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피해자 지원보상을 김지형 조정위원장이 소속된 법무법인 지평에 맡겼다. 지원보상위원회는 다음달 초 사무국을 개설하고 빠르면 올해 안에 지원보상을 시작한다. 지원보상위가 보상신청을 접수하면 삼성전자·반올림과 협의해 보상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지원보상 대상은 삼성전자 최초 반도체 양산라인인 기흥사업장 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17일을 기준으로 반도체·LCD 라인에서 1년 이상 일한 삼성전자 현직자·퇴직자 전원과 사내협력업체 현직자·퇴직자 전원이다. 업무관련성은 산재보험보다 넓게, 보상수준은 산재보험보다 낮게 설정했다. 백혈병의 경우 최대 1억5천만원의 피해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지원대상에 빠진 하청노동자와 반도체·LCD 생산라인 외 계열사 직업병 지원보상 문제는 미해결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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