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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제노동자들이 노조 만든 이유] 전태일 열사 분신 반 세기, 바뀐 것 없는 봉제업 노동현실

기사승인 2018.12.0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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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킷 한 벌 공임 8천500원, 20년간 1천200원 인상 … 서울시 참여하는 3자 협약·공제회 실험

   
▲ 정기훈 기자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다 놀래요. 요새 그렇게 일하는 곳이 어디 있냐고요.”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 봉제공장. 이정기(49)씨가 재봉틀 위 옷감을 움직이며 말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바늘이 빠르게 검정색 옷감을 찍어 내리자 코트의 팔 부분이 완성됐다. 이씨는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장이다. 서울지역 봉제노동자들은 지난달 27일 지회를 출범했다. 봉제노동자들이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을 계기로 청계피복노조를 만든 지 48년 만이다.

이 지회장은 공장이라기에는 작은 지하 작업실이 전부인 봉제공장에서 아내와 단 둘이 봉제일을 하고 있다. 재하청업체 노동자이자 사장인 이 지회장 부부가 만든 옷은 주로 동대문시장에서 팔린다. 32년째 봉제일을 하고 있는 그는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반 세기가 흘렀지만 장시간·저임금 노동 구조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며 “봉제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방안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수기엔 하루 15시간 노동”

지회에 따르면 봉제시장은 옷을 파는 원청과 옷을 만드는 하청업체, 그중 옷감 봉제와 같은 일부 작업만 하는 재하청업체 구조로 이뤄져 있다. 옷 종류에 따라 구조가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원청 밑 하청, 하청 밑 하청 형태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정기 지회장 같은 재하청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서 일감을 받아 ‘객공’으로 흩어져 일한다. 사장과 노동자의 경계가 모호한 소규모 작업을 하다 보니 사장이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함께 일하는 이들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4대 보험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유다. 이 지회장은 “그래도 최근에는 사장들이 사업자등록을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회에 따르면 20~30년 동안 공임은 동결 수준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찔끔찔끔 올랐다. 그는 “20년 전 남자 재킷 한 벌당 공임이 7천3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8천500원가량”이라며 “20년간 겨우 1천200원 인상된 것인데, 다른 종류 옷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성수기엔 하루 15~16시간 정도의 장시간 노동을 한다. 물량이 없으면 일손을 놓아야 하는 신세다 보니 비수기 때 못 번 돈을 채우려면 성수기에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이 지회장은 “과거에는 비수기인 여름에도 성수기인 가을·초겨울에 옷이 팔릴 것을 대비해 옷을 미리 만들었다”며 “요새는 섬유시장이 너무 좋지 않아 비수기엔 만들 옷이 없어 성수기 때 일하다 보니 노동시간이 과거보다 더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성수기엔 오전 8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11시30분 정도까지 일한다고 했다.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는 것이다. 토요일은 오후 7시까지 일한다. 반면 비수기엔 물량이 적어 한 주에 2~3일밖에 일을 못 할 때가 많다. 일주일 내내 일이 없을 때도 있다. 그는 “성수기 땐 월 300만~400만원 정도를 벌지만, 비수기 땐 월 50만원도 못 벌기도 한다”며 “4대 보험이나 퇴직금 같은 사회보장도 받지 못하는 데다 돈을 모을 수가 없어서 노후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 정기훈 기자

“파편화된 봉제노동자 공제회로 모으겠다”

그렇다고 봉제노동자가 노조를 조직해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봉제업 특성상 노동자와 사용자의 경계가 모호하고, 둘의 처지도 비슷하다. 1인 사업장이거나 이 지회장처럼 부부끼리 일하는 경우에도 봉제인은 사장이자 노동자여서 처우개선을 요구할 명확한 상대가 없다. 사장과 직원이 함께 생활하며 일하기 때문에 관계가 긴밀해 노조를 조직하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봉제노동자들이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하고 1998년 서울지역의류제조업노조로 재편했지만 지금까지 활동이 이어지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지회장은 “섬유산업이 하향세에 접어들면서 비수기 때 작업할 물량이 없게 되자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객공을 데리고 있기 어려워졌다”며 “30~50명씩 모여 일하던 객공들이 살 길을 찾아 흩어지다 보니 소규모로 일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새는 외국에서 저렴하게 들어오는 옷이 너무 많다 보니 단가인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낮은 공임이 유지되고 있다”며 “피라미드의 맨 밑에 있는 재하청 봉제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보겠지만 근본적으로 섬유산업 자체가 망가진 상태라 처우개선을 원청·하청업체에 호소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숨 지었다.

지회는 다른 조직화 전략을 세웠다. 지회는 ‘서울시-사업주-노동자’가 참여하는 3자 협약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강도수 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공정임금·공정단가, 안정된 일자리와 물량, 마케팅, 노동건강권과 노동환경 개선 문제는 봉제업에서 개별 사업주나 노동자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3자 협약 체결에 나선다면 봉제노동자들의 권익도 향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석호 전태일 50주기사업위원장은 “단순히 공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에서 교육·훈련을 제공해 한국의 대표 패션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상생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지회는 공제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노조 내부에 공제회를 만들어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적립한 자금으로 주거·의료·금융상담·상조·취업 같은 봉제노동자들 생활에 필요한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한석호 위원장은 “4대 보험 적용도 못 받는 봉제노동자에게 실질적 혜택을 줌으로써 노조에 관심을 가지게 하겠다”며 “1만명 이상의 조합원을 조직해서 공제회를 만들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회는 "조합원들에게 노조를 알리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정기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흩어져 있어 노조를 홍보하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일이 발로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며 “12월15일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설문조사를 해 조사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노조 방향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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