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대리운전노조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보험상품 1개 가입으로 일할 수 있도록 관련 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업체가 요구하는 보험에 가입해야 해서 2~3개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제정남 기자>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죠. 보험회사와 대리운전회사가 딱 그 모양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10년가량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한아무개씨의 말이다. 그가 대리운전보험료로 지출하는 금액은 최근 3년 사이 4배가량 뛰었다. 월 7만원 안팎이던 보험료는 2015년 12만원, 2016년 19만원, 지난해에는 29만원까지 올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리운전회사마다 보험가입 요구, 2~3개 중복 가입

3일 전국대리운전노조(위원장 김주환)에 따르면 대부분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대리운전업체가 알선하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한다. 운전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대리운전업체가 필수적으로 가입을 시킨다. 노동자의 개별 나이·사고율에 따라 보험료율은 다르게 적용된다. 노조에 따르면 대략 월평균 10만원가량이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카카오T대리·로지·콜마너·아이콘 등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을 스마트폰에 설치해 사용한다. 해당 업체가 보내 주는 고객 요청(콜)을 접수받아 일한다. 많은 콜을 받기 위해 노동자들은 여러 곳의 대리운전업체와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 카카오T대리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은 보험료를 받는다. 업체 두 곳에서 일하려면 보험료를 20만원 내야 한다는 의미다. 업체 1곳에만 속한 대리운전 노동자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박재순 노조 사무처장은 "대리운전 이용자가 자동차보험 대리운전특약에 가입해 연간 2만원만 추가로 내면 대리운전 이용시 발생하는 사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돼 있다"며 "보험회사는 2만원으로 보장할 수 있는데도 사회적 약자인 대리운전 노동자에게 연간 수백만원을 수탈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회사는 2중 3중 가입으로 보험료를 챙겨 가고 대리운전회사는 보험회사에서 수수료를 받으며 중간 갈취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리운전 노동자에 대한 보험 중복가입 문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2015년 '대리운전보험 관련 서비스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금융감독원은 대리운전회사뿐 아니라 대리운전 노동자에게도 보험증권을 발행하도록 조치했다. 대리기사가 자신의 보험료를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보험사에 구축했다. 그러나 보험 중복가입 여부를 확인하거나 대리운전회사의 보험가입 강요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노조와 대리운전 노동자단체들에게 보험 중복가입을 막기 위해 노동자 개인별 요율을 적용하는 단체보험을 출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한 개의 보험만 가입하면 여러 대리운전회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던 조치가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보험료 인상·가입 거부 피하려 자비로 사고 뒷수습

정부 조치가 지연되면서 현장상황은 심각해졌다. 보험사들이 대리운전 노동자 사고 이력기록을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부하거나 보험료율을 올리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주환 위원장은 "사고이력을 감추기 위해 노동자들이 보험처리를 않고 자비로 처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보험료·프로그램 사용료·콜건당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착취당하고 이제는 자비로 사고비까지 물어내는 상황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노조는 과도한 대리운전보험료를 낮추고 중복가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힘을 쏟기로 했다. 노조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대리운전보험 정상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보험회사와 대리운전회사는 과도한 보험료와 수수료를 받아 가며 대리운전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금융감독원은 한 개 보험에만 가입해도 일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결의대회는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과 공동주최했다. 두 조직 조합원 150여명이 참여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