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위험의 외주화가 또 한 명의 젊은 비정규 노동자 목숨을 빼앗아 갔다.

공공운수노조와 한국서부발전에 따르면 11일 새벽 3시23분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한국발전기술 소속 계약직 현장운전원 김용균(24)씨가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은 채 발견됐다. 민주노총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성명을 내고 "컨베이어벨트가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 1인 근무가 그를 죽였다"고 지목했다.

혼자 설비 점검 … 언제 죽었는지 알 수도 없어

한국발전기술은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운송설비 운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다. 김씨는 한국발전기술 1년 계약직 현장운전원으로 채용된 지 석 달 만에 변을 당했다.

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에 따르면 김씨는 전날인 10일 오후 6시께 출근해 석탄을 저장소에서 보일러로 운송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순찰하는 일을 했다. 김씨는 같은날 밤 9시30분께 한국발전기술 과장과 전화통화를 한 뒤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동료들이 김씨를 찾던 중 새벽 3시20분께 컨베이어벨트에 끼인 고인을 발견했다. 고인이 언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6시간 가까이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없다. 혼자 일했기 때문이다.

이준석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장은 "24시간 돌아가는 발전소에 석탄을 공급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는 일은 주요 업무"라며 "인력이 부족해 2인1조 근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지부장은 "컨베이어벨트에 문제가 생기면 육안으로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기계가 가동 중인 상태여서 대단히 위험한 작업"이라고 전했다.

발전소 산재 사망자 92% 하청노동자

위험의 외주화가 청년 비정규직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수개월 전에는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청년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년 전에는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젊은 하청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울먹이며 말했다.

"오늘도 동료가 죽었습니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꽃다운 나이의 비정규 노동자였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해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더 이상 죽지만 않게 해 달라고 했는데 오늘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하청노동자지만 우리도 국민입니다. 죽지 않게 해 주세요. 그 길은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는 것입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를 신청하는 인증샷이 고인의 마지막 사진이 됐다. 사진에서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석탄가루가 묻은 시꺼먼 방진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5개 발전사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7천800여명에 이른다. 원청인 발전회사들은 "경상정비는 생명·안전업무가 아니라서 직접고용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정규직 전환을 외면하고 있다.

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냐"며 "죽지 않게만 해 달라"고 호소한다.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서부발전을 포함해 5개 발전사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발생한 346건의 사고 중 337건(97%)이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노동자 4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92%인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이준석 지회장은 "발전소 정규직이었다면 이렇게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발전회사들이 온갖 위험하고 힘든 일은 비정규직에게 떠맡기면서 정규직 전환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상시·지속적이고 안전·생명에 직결되는 업무는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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