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내년 고용노동부 거의 모든 정책의 방점이 고용에 찍혔다. 노동부가 올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 추진했던 최저임금 인상·노동시간단축 정책은 줄줄이 수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업무보고에서 사라진 노동정책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19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2019년에는 포용적 노동시장 구축을 목표로 일자리 기회 확대와 일자리 질 향상에 부처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날 '포용적 노동시장, 사람중심 일자리'를 주제로 3대 핵심과제와 6대 중점과제를 보고했다. 3대 핵심과제는 △고용서비스·고용안전망 강화 △직장내 갑질·채용비리 근절 △최저임금·노동시간단축 현장 안착이다.

그런데 노동부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일자리 문제 해결'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던 이재갑 장관의 취임 일성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모든 정책의 방향이 고용과 일자리 창출에 쏠려 있다.

노동정책이라고 할 만한 건 이른바 '양진호 사태'로 촉발된 '직장내 갑질·폭행 근절 방안'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사업장 지도 강화 방침' 정도다. 이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노동정책이 없다.

당초 올해 상반기 법제화를 추진하기로 했던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나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 문제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업무보고 자료에 "공정하고 대등한 노사관계 조성을 위해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이라고 표현돼 있을 뿐이다. 노동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박화진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은 "시기의 문제일 뿐,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야당과 언론·재계에서 주장하는 "고용 없는 노동정책" 비판이 대폭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업무보고에 앞서 이 장관은 올해 노동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했던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 정책에 대해 '반성'부터 했다.

이 장관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단축 등 일자리 문제 해결과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적극 추진해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어려운 경제상황과 소상공인의 호소, 정책추진 과정에서 사전준비 부족 등 비판도 상존했다고 평가한다"며 "내년에는 현장 목소리를 토대로 정책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최저임금 결정기준과 결정방식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생계비·임금·노동생산성 외에 물가상승률·경제성장률·고용률 같은 경제적 요인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개편하고, 노사와 공익위원 각 9명씩 참여해 과반수로 결정하는 현행 결정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이원화하거나 결정 권한을 아예 국회로 옮기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여러 개가 발의돼 있다.

노동부는 특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 제도개선(탄력근로제 포함) 논의를 지원하고, 주 52시간 노동시간 위반 처벌유예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식적으로는 "내년까지 주 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 연장을 결정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내부에서는 기간 연장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52시간 노동은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됐지만, 재계 요구로 올해 연말까지 6개월간 처벌이 유예됐다. 처벌을 유예한다는 것은 주 52시간 노동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동부가 처벌유예 기간을 연장하면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인프라 구축 '눈길'

고용서비스·고용안전망 강화 대책은 관심을 끈다. 경기악화로 인한 구조조정 위험성이 잠재해 있는 만큼 실업의 부정적 위험이 큰 취약계층 보호에 주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노동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을 추진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형 실업부조'를 2020년 도입하기 위해 기반 마련에 나선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반복적인 실업상태에 놓인 근로빈곤층이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을 받는 기간에 현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중위소득 60% 이하 근로빈곤층과 중위소득 60~120% 청년층 중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한 참여자에게 매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간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하도록 설계돼 있다. 노동부는 한국형 실업부조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입법화를 추진한다. 내년 1월 임시국회에 (가칭)한국형실업부조법 제정안을 발의한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과 맞물려 고용서비스 전달체계도 혁신한다. 실업급여 지급 같은 기능업무에 치중한 고용센터를 '실업급여-직업훈련-취업지원'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종합서비스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내년 4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실업급여·직업훈련·취업지원을 통합 제공하는 '취업중심 패키지 센터'를 시범운영한다. 전국 100여개 고용센터 중 공모를 통해 뽑힌 10여개 센터를 대상으로 시범운영할 계획이다.

지역맞춤형 일자리 사업은 지방자치단체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지역 현실을 잘 아는 지자체가 정책을 세우면 정부가 지원 강화에 초점을 맞우겠다는 것이다. 산업별 고용영향평가를 통해 고용친화적 정책을 유도하고,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제조업 구조조정 대응·지원도 강화한다.

문재인 대통령 "고용문제 성공 못했다는 게 국민 평가"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일자리 문제에서 빠른 성과 도출을 지시하면서 노동부의 고용편향 정책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기 전 모두발언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낸 성과들이 많이 있다"면서도 "적어도 고용문제에 있어서는 지금까지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국민의) 엄중한 평가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일부 일자리 질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좋은 일자리를 늘린다는 면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며 "지표로도 작년에 비해 금년도 일자리 늘어나는 숫자가 굉장히 줄어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책이 성과를 제대로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국민은 오래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며 "일자리 문제, 내년부터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 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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