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법 2018. 11. 15. 선고 2016가합531053 판결

1. 사실

피고 한국산업은행은 고용노동부 장관의 파견업 허가를 받은 ㈜두레비즈와 임원이나 지점장 운전업무 등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두레비즈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원고들을 운전기사로 사용했다. 원고들(원고 임○○ 등 8명)은 피고 은행의 본점·지점에서 피고의 임직원으로부터 당일 행선지를 비롯해 업무에 관한 지시를 직접 받아 근무하다가 해고됐다. 원고들에 대한 해고는 두레비즈가 원고 임○○ 등 7명에게 피고와의 용역계약 해지를 이유로 2016년 4월30일자로 원고들과의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는 통지로 하고, 원고 조○○에게는 재택근무 발령 후 2016년 5월9일 퇴사처리로 했다. 원고들이 해고될 당시 피고 은행에서 2년을 초과해서 운전업무를 수행한 두레비즈 소속 다른 근로자들은 파견근로를 주장하며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라 피고가 사용사업주로서 직접고용의무가 있다고 서울남부지법에 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원고들 근속기간은 2년이 경과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법적 대응을 상담하면서 피고 은행 근로자와의 임금 등 차별 부분의 청구와 함께 근로자파견계약이 아닌 용역계약으로 원고들을 사용한 점을 주목해 무허가파견 내지 파견금지업무에 한 불법파견과 마찬가지로 사용 즉시 피고의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근로자지위확인의 청구도 하기로 정하고서, 원고들은 피고 은행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를 제기했다.

2. 쟁점

원고들은 피고 은행에서 용역계약이 아닌 근로자파견계약에 따라 파견근로를 한 것이고, 그 용역계약은 근로자파견계약을 위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파견법상 무허가 내지 파견금지업무에 한 불법파견과 마찬가지로 피고가 사용한 즉시 고용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은행은 운전업무와 관련해 두레비즈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근로자파견관계가 아니라고 항변했고, 설령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더라도 ① 운전업무가 파견허용업무에 속하고 ② 파견업 허가를 받은 업체(두레비즈)에서 제공받은 것이므로 근로기간이 2년이 초과하지 않은 원고들을 직접고용할 의무가 없다고 다퉜다. 이에 대해 원고들은 피고 은행에서 파견근로관계에서 근무했고, 파견근로관계인 경우 파견허가업체로부터 파견허용업무에 근로자를 제공받아 사용하더라도 용역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무허가·파견금지업무에 사용한 파견법 위반시와 같이 단 하루를 사용해도 사용사업주인 한국산업은행에 파견법상 즉시 고용의무가 인정된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재판상 주된 쟁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피고 은행에서 원고들의 운전업무 수행이 파견근로인지 여부에 관해서는 도급(용역)과 파견 여부로 많은 사건들에서 다투고 이에 관한 법원 판결들이 나와 있는데, 파견법상 파견대상업무에 파견허가를 받은 사용자가 용역(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한 파견근로에 있어서도 무허가파견 내지 파견금지업무의 불법파견과 동일시하여 그 사용 즉시 사용사업주에게 고용의무가 발생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참고로 현행 파견법은 파견허용업무를 32개 업종으로 한정하고(5조),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파견업 허가를 받은 자만 파견업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7조3항), 사용사업주는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사업자로부터 파견을 받아 사용하는 경우는 즉시 직접고용의무를 지고(6조의2 1항5호), 파견업 허가를 받은 사업자에게 파견을 받은 경우에는 2년이 경과했을 때 직접고용의무를 지지만(6조의2 1항3호), 파견업허가업자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서 파견근로자를 제공받아 사용한 경우 원청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에 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3. 판결

서울중앙지법 41민사부(재판장 박종택)는 먼저 형식적으로는 두레비즈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인사권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피고가 원고들의 채용, 근무 장소 결정, 업무 배치와 변경, 출퇴근 등 사실상 근태 관리를 하고 피고 임직원의 지시에 따라 차량을 운행하는 등 산업은행에서 원고들이 근로자파견관계에서 근로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파견법상 파견허용업무인 운전업무에 파견업 허가를 받은 업체로부터 근로자를 제공받아 사용했더라도 파견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 도급(용역)계약으로 근로자를 사용한 경우 파견금지업무에 사용하거나,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로부터 불법파견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용사업주인 피고가 그 사용 즉시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구체적으로 “사용사업주가 파견법의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도급계약의 외관을 취한 경우에 형식적으로 ‘근로자파견허가를 받은 자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은 것’이라는 이유로 적법한 파견과 동일하게 파견법 6조의2 1항3호를 적용해 직접고용의무 발생에 2년의 파견기간을 요구한다면, 사용사업주는 위 2년의 기간 동안 외관이 도급계약임을 내세워 파견법 규제를 회피하는 불법적 이익을 누릴 뿐 아니라, 파견역무 제공기간이 2년을 도과하기 전에 그 실질이 파견임이 적발될 경우에는 도급계약의 외관에 따라 근로자파견관계를 손쉽게 해지해 파견법에 따른 직접고용의무를 회피할 수 있으므로, 근로자파견사업 허가를 받지 않은 자에게 근로자파견역무를 제공받는 불법파견과 동일한 불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며 “이는 파견법 규제를 받는 적법한 파견과의 관계에서 법적 형평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사용사업주의 파견법 규제 회피 및 위반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불법파견과 동일하다”고 판결이유에서 밝혔다.

4. 평가

이번 판결은 실질적으로 파견사업을 수행하려는 자가 파견업 허가를 받고 그 파견업무에 근로자파견을 하면서도 도급(용역)계약의 외관을 꾸민 경우에는 무허가 파견사업주에게 파견을 받은 것과 동일하다고 봐 무허가 불법파견의 사용사업주로서의 파견법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는 판결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현행 파견법은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파견사업주에게 근로자파견을 받거나, 파견금지업종에 근로자파견을 받은 경우에는 그 사용 즉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한다고 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안과 같이 파견업 허가를 받고서 파견허용업종에 근로자파견계약이 아닌 도급(용역)계약을 통해 근로자파견을 받은 경우에 있어서는 사용사업주로 하여금 사용 즉시 직접고용의무가 인정된다는 규정은 두고 있지 않아 파견근로자의 법적 보호에서 중대한 공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을 통해 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즉시 직접고용의무에 관한 파견법(6조의2 1항5호) 규정을 유추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해 도급(용역)계약을 통해서 파견법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용사업주 행위는 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파견근로자의 고용 보호에 뜻깊은 판결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 파견법상 파견허용업종을 확대해 왔고, 오늘날도 현행 파견법조차 지나치게 파견근로자의 고용을 보호하고 있다며 사용자 자본이 보다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판결 사안과 같은 일을 겪는 노동자들이 더욱더 발생할 수 있다. 파견근로자의 고용 보호를 위해 신속한 법 정비가 있어야겠지만, 법의 공백이 있는 조건에서도 적극적으로 기존 법규정을 유추적용하는 법원의 법 집행을 기대한다. 그것이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한 파견법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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