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영신여객 등 일부 하급심 사건에서 고정성을 폭넓게 해석해 재직자만 주는 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는 판결이 나온 적은 있지만 재직자 조건의 위법성을 근거로 '무효'라고 못 박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고로 이어지면 대법원에서 '재직자 조건'을 둘러싼 통상임금 소송 2라운드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부(재판장 박영재)는 지난 18일 세아베스틸 노동자 정아무개씨 등 12명이 대표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에서 노동자 손을 들어줬다. 세아베스틸은 재직자에 한해 정기상여금을 연간 800% 지급했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를 놓고 다툼이 생기자 노사는 정씨 등이 대표로 소송을 제기하고 그 결과를 전체 직원 1천150명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서부지법은 회사측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서울고법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용자가 정기상여금에 일방적으로 재직자 조건을 부가해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노동자에 대해 이미 제공한 노동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기발생 임금에 대한 일방적인 부지급을 선언하는 것으로 그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고정적인 금액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형태의 정기상여금은 임금, 즉 노동의 대가에 해당하고 그 지급기간이 수개월 단위인 경우에도 이는 노동의 대가를 수개월간 누적해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성과급의 경우 일정한 실적(목표)에 도달하면 지급하는 조건이 급여를 발생시키는 조건에 해당하지만,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은 지급조건에 불과해 임금의 본질과 구분되는 외부적 조건일 뿐이라고 법원은 해석했다.
법원은 전체 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도 고려했다. 법원은 "세아베스틸은 월할 정기상여금이 월 기본급의 80% 수준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높아 노동자 생활유지를 위한 주된 원천이 된다는 측면에서 정기상여금은 기본급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김기덕 변호사는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 약정은 무효라는 이번 판결에 따라 퇴직자도 미지급 임금청구가 가능해졌다"며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법원에서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형식적인 판결을 내렸는데 이번 서울고법 판결에는 임금의 본질에 대한 법원의 전향적이고 심도 있는 고민이 담겨 있어 향후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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