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또 하청업체 노동자다. 노동자 김용균님의 뉴스를 차마 읽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등장하는 뉴스는 더더욱 볼 수가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한 번만 만나 달라며 최근까지 청와대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했다는 말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본질적인 문제가 너무나 시급하기 때문이다.

내일 또 누군가 죽을지 모른다. 이것은 비극이 아니라 공포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이라고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누구누구 정치인이 가로막고 있다는데 그 개인을 비난할 에너지와 시간도 없다.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다는데, 여하간 우리는 그런 것들은 모르겠고 국회가 무조건 27일 본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혁명이란 ‘토대’의 변화를 말한다. 단지 권력의 이동이 아니다.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신해혁명 등 모든 혁명은 하부구조에 의한 상부구조의 개혁 또는 체제의 변화가 요체다.

집권여당과 청와대는 “촛불혁명”이라고 한다. 찬성한다. 다만 혁명다운 대변혁을 만들어 내야 한다. 문제는 늘 구체적이고 해결은 편파적이어야 한다.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는 공익이란 존재하지 않고 특히나 민생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를 살리고 누구의 이익을 양보시킬 것인지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즉 지금은 비정규 노동자를 살리고 기업을 옥좨야 할 때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외주화·간접고용·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 해서 기업이 죽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노동자는 실제로 죽는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요지인 위험업무 외주화 제한, 원청 처벌 강화, 물질안전보건자료 접근성 개선, 작업중지권 보장 등의 조치는 필요최소한에 불과하다. 사실 이것들은 개혁도, 변혁도, 혁명도 아닌 ‘지연된 정의’ 정도에 불과하다.

2인1조 원칙만 지켜졌더라면, 안전스위치만 잘 작동했더라면, 수많은 가정들은 이제 필요 없게 됐다. 김용균님은 영원한 침묵으로 들어가 버렸다. 2년 전 구의역 비정규 노동자 사망 이후 우리는 또 다른 죽음을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었다.

10년 동안 한국 서부발전에서는 10명의 하청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원청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어떤 대책 수립도 없었다.

국민은 김용균님을 추모하는 마음과 함께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심정으로 국회를 바라보고 있다.

정부와 국회, 기업에 국민은 살인방조죄를 선고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편파적인 내용의 입법과 일방적인 집행으로 기울어진 시소를 조금이나 움직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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