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수도권 총파업대회에서 산별연맹 대표자들이 탄력근로제와 비정규직 등이 적힌 판을 망치로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올해 7월1일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 시대가 열렸다. 지난 2월 국회에서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부터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됐다. 야근과 주말출근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간단축 근기법 개정은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과로 사회'에서 벗어나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주 52시간제가 제대로 첫발을 떼기도 전에 노동시간단축 취지 자체를 흔드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정부는 '현장 연착륙'을 이유로 6개월의 사업주 처벌유예(계도) 기간을 줬다. 그런데도 재계는 만족하지 않았다. 특정 주에 최대 64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추가 연장근로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해 달라고 아우성쳤다. 국회가 올해 근기법을 개정하면서 부칙 3조(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을 위한 준비행위)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2022년 12월31일까지 준비하라'는 내용을 담았지만 소용없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장시간 노동에 면죄부를 주고 '합법적 과로'를 양산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경제상황을 이유로 기업친화적 정책기조로 돌아선 정부·여당의 발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여당은 내년 2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처리하기로 못을 박아 놓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화로 제도개선안을 도출하라고 요구했다. 말이 좋아 요구지, 초시계를 켜 놓고 합의를 압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달 말 만료되는 노동시간단축 위반 사업주 처벌유예 기간도 내년 3월까지 추가로 연장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둘러싼 노사정 대화가 시작된 가운데 지난 20일 고용노동부가 밝힌 실태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하는 기업은 3.5%에 불과했다. 기업의 75.7%가 "현행 제도로도 주 최대 52시간제에 대응 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노동시간단축 시행 6개월 만에 장시간 노동 근절 취지는 사라지고, 실체 없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요구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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