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았다. 집권 초기 공약한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다. 여기저기 눈치 보며 끌려가다간 초심도 잃고 민심도 잃고 성과도 잃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은 오래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다”며 성과를 주문했다.

문제는 ‘어떤 성과’냐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노동시간단축을 추진했다. 그러나 경제위기·실업을 내세운 재계와 보수진영의 공격 속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노동시간단축 계도기간(처벌유예)을 두며 한발 물러섰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면 좋으련만 문재인 정부가 던져 놓은 화두를 살펴보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드는 게 사실이다. 노사정·전문가 100명이 뽑은 올해 주목할 노동이슈에 이 같은 기대와 우려가 고스란히 담겼다.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노동존중 사회·소득주도 성장으로 나아가는 성과를 낼지 기대와 우려 속에 2019년 새해가 밝았다.

노동시간단축·최저임금, 지난해 이어 올해도 쟁점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노사정·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19년 노동현안에서 가장 주요하게 부각될 노동이슈’를 설문조사했다. 100명 중 66명이 "탄력근로제 등 노동시간 제도 개선 및 후속조치"를 올해 주목할 노동이슈 1위로 꼽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월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같은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실시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해 휴식이 있는 삶을 위한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말했듯 변화는 시작됐으나 가야 할 길은 멀다. 정부는 지난해 현장혼란을 이유로 6개월 처벌유예를 하더니, 급기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추가 처벌유예 연장(3개월)으로 말뿐인 노동시간단축을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당·정·청이 ‘2월 입법’을 목표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최대 6개월로 늘리는 방향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자 재계는 한발 나아가 최대 1년을 요구하고 있다. 1월 말 합의를 목표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 중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 이목이 집중되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최대 노동현안은 단연 최저임금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목표로 지난해 최저임금을 7천530원으로 16.4% 올렸다. 올해도 10.9% 오른 8천350원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부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까지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니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무산"을 선언했다.

정부는 올해 최저임금 결정기준과 결정구조를 개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한 산입범위 확대와 처벌유예에 이어 결정방식까지 손댈 움직임을 보이는 만큼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노사정·전문가 63명이 "최저임금 인상률과 제도 변경"을 올해 주목할 노동이슈 2위로 지목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할 권리 보장"은 44명의 선택을 받아 3위에 올랐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11월 4개월간의 사회적 대화 끝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방향을 내놨다. 해직자·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고 공무원·교원의 단결권을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경사노위는 1월 말까지 재계가 요구하는 단체협약과 쟁의행위 관련 제도개선 사항을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한다. 2월 입법이 목표다.
 

사회적 대화, 민주노총의 선택은?

지난해 10월17일 정책대의원대회 유회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논의하지 못한 민주노총이 28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관련 의제를 다룬다.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와 사회적 대화 향방"이 4위를 기록했다. 경사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탄력근로제 확대 등 거대 노동이슈가 논의 중인 가운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여부에 눈길이 쏠린다. 노사정은 지난해 11월22일 경사노위를 출범하며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의 책임 있는 한 주체로서 조속히 경사노위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권고했다.

5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다. 노동부에 따르면 1월 현재 비정규직 17만명에 대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 정부가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지만 곳곳에서 제대로 된 기준 없는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이면서 현장 갈등이 증폭하고 있다. 올해 민간위탁 기관을 대상으로 한 3단계 정규직 전환이 예정된 가운데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해 12월27일 여야 정쟁 속에 발목 잡힐 뻔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2019년에는 경제논리와 기업의 무책임 속에 김씨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노사정·전문가들의 마음이 순위에 반영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통과 및 위험의 외주화 금지"(19명)가 공동 6위를 차지했다.

최고·최저·최악으로 점철된 고용지표 개선될까

지난해 고용지표에 자주 등장한 단어는 '최고·최저·최악'이다. "실업률 최고" "고용률 최저" "최악의 경제상황" 같은 표현으로 쓰였다. 경제위기로 서민 삶은 녹록지 않았고 청년실업과 고용위기는 고용·노동정책을 좌지우지했다. 기해년에는 경제위기가 풀리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기를 희망하는 바람이 적지 않았다. "고용지표 및 경기 변동"이 공동 6위다.

임금체계 개편도 주목받는 이슈 중 하나다. 9명이 지목해 8위에 올랐다. 정부는 공공기관 직무급제 도입을 올해 상반기 중점과제로 추진한다. 지난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직무급제 도입을 검토하다 노동계 반발로 논의가 중단된 상황에서 올해 직무급제 도입을 두고 또 한 번 노정갈등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가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일원화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계속될 전망이다.

공동 9위는 각각 4명이 선택한 "광주형 일자리 향방"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플랫폼 등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보장"이다. 2014년부터 추진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적정임금과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 경영, 원·하청 관계개선이라는 4대 원칙마저 훼손된 채 깜깜이 협상으로 이어지다 끝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광주시가 사회통합적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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