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페 신발을 만들던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미소페 본사 앞에서 공장 폐업을 규탄하고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백화점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해 서울 성수동 제화업체 20여곳이 20년 만에 노조와 공임 인상에 합의했는데, 이후 한 하청업체가 중국 이전을 위해 공장을 폐업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지난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미소페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길게는 10년 동안 해당 공장에서 일했던 제화공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며 미소페를 운영하는 원청회사 비경통상에 실직한 제화공 고용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지부 조합원 150여명이 참여했다.

구두 브랜드 미소페 하청업체 중 1공장(슈메이저)은 지난달 26일 폐업했다. 중국에 새 공장을 가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22일 지부와 하청업체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하며 약 20년 만에 공임 인상에 합의한 뒤 일어난 일이다. 1공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제화공 25명은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업급여도 없이 길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

이날 제화공들은 “20년 가까이 한 족당 공임 5천원대를 받으며 15시간씩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냐”고 항의했다. 박완규 제화지부 탠디분회장은 “제화공들이 매달 20만~30만원에 판매되는 신발을 한 족당 5천500원씩 받고 묵묵히 일했기에 미소페가 지금처럼 안착했다”며 “15년 이상 공임이 동결됐다가 드디어 1천300원 인상됐는데, 저들은 그것마저 빼앗으려 제화공들을 이 엄동설한에 거리로 내쫓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공장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잃은 김명수씨는 “우리가 올여름에 공임을 올려 달라고 농성을 했더니 본사에서 보란 듯이 일감을 줄이더라”며 “줄어든 물량 탓에 돈을 아끼려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며 일했는데 회사는 그것도 못마땅한지 공장을 중국으로 옮긴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말에 1공장에서 일했던 제화공들은 “어디 다닐 곳도 없고 지금 다들 손 놓고 놀고 있다”거나 “너무 황당하고 착잡하다”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지부는 사측이 4대 보험·퇴직금 지급을 회피하려 공장 이전을 결정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지난해 미소페 하청회사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서에는 “비경통상 하청업체 4곳은 2019년 4월 내에 4대 보험과 퇴직금과 관련해 논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부는 “당시 사측은 진행 중이던 구두 브랜드 소다 제화공의 퇴직금 소송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이후 법에 따라 4대 보험에 가입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지난달 20일 대법원이 소다 제화공들의 청구액 대부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자 부담스러워서 공장을 중국으로 옮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전했다.

미소페 “원청과 무관” vs 지부 “원청도 책임 있어”

원청인 미소페는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미소페 관계자는 “원청이 폐업시킨 것이 아니라 1공장 사업주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해외 이전 계획을 밝힌 1공장 사업주와 계속 거래를 할지 안 할지 아직 잘 모르지만 못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공장 폐업으로 이미 주문받아 놓은 것도 취소하는 등 우리도 피해자”라며 “지부에서 도움을 요청해 교섭에 참여했을 뿐 4대 보험 가입을 명시한 단체협약서에도 하청업체들만 서명했고 원청인 우리는 서명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부는 반박했다. 지부 관계자는 “공임 인상분은 하청이 아니라 원청이 내려보내는 만큼 하청업체가 자체적으로 중국 이전을 결정할 이유가 없다”며 “원청이 하청업체 폐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을 리 없다”고 귀띔했다. 그는 “당시 교섭에 원청이 참여해 교섭을 지휘한 만큼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지부는 백화점과 홈쇼핑에 구두 유통 수수료를 내리라는 요구도 했다. 지부는 “제화업체는 공임 인상에 따른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데, 제화공 공임이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백화점에 주는 유통 수수료”라며 “백화점에서 파는 구두 한 켤레 소비자가격이 30만원이면 백화점이 온·오프라인 수수료 38%를, 홈쇼핑이 41%를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미소페 관계자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1공장이 다른 업체와의 거래를 염두에 두고 해외 이전을 계획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지부는 집회 후 미소페 매장이 있는 서울 광진구 롯데백화점 앞까지 행진한 뒤 집회를 이어 갔다. 이들은 다음날 각 백화점 안에 있는 미소페 매장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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