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위한 결정구조 개편안을 내놓았다.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고용수준과 기업 지불능력·경제성장률을 반영하고,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최저임금위원회를 이원화하는 내용이다. 정부안대로 될 경우 고용부진·경기불황이 최저임금 결정기준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최저임금 속도조절로 이어진다. 가계 지갑을 두둑이 채워 성장동력을 만들겠다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역주행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경제상황 포함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30년 만에 개편하고자 한다"며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편안의 핵심은 최저임금위 결정구조 이원화다. 9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가 인상률 상·하한 구간을 정한 뒤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결정위원회'가 해당 범위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정부가 검토 중인 구간설정위 위원 선정방법은 두 가지다. 노사정 5명씩 15명을 추천한 뒤 노사가 기피하는 인물을 3명씩 순차배제하거나, 노사정이 3명씩 추천해 9명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선정된 전문가 9명이 노동자 생계비와 소득분배율뿐만 아니라 고용수준·기업 지불능력·경제성장률 같은 경제상황과 사회보장급여 현황을 고려해 최저임금 인상률 상·하한선을 정한다. 의결방식은 지금처럼 재적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이다.

이 장관은 "노동계와 경영계 요구안을 중심으로 줄다리기하듯이 진행되던 최저임금 심의 과정이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가위원 선정 과정에서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취지대로 노사 참여가 보장되기 때문에 공정성이 담보된다"고 설명했다.

상·하한 구간에서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결정위원회는 노·사·공익 3자 동수로 구성하되, 위원수를 21명(노·사·공익 각 7명) 또는 15명(노·사·공익 각 5명)으로 줄인다. 구간설정위 위원은 결정위에도 참여한다.

정부가 독점했던 공익위원 추천권은 국회 또는 노사 단체에 일부 주는 방식을 검토한다. 공익위원을 7명으로 할 경우 △국회가 3명, 정부가 4명을 추천하거나 △노사정이 각각 공익위원 5명씩을 추천해 순차배제하는 식이다.

결정위 노동자·사용자 위원은 현행처럼 법률이 정한 노사 단체가 추천하고, 청년·여성·비정규직, 중소·중견기업, 소상공인 대표가 반드시 포함하도록 법률에 명문화한다.

경제부총리는 '속도조절용 개편' 밝혔는데
노동부 장관은 속도조절 아니다?


이 장관은 개편안이 최저임금 속도조절 장치가 아니냐는 지적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인상률을) 어떻게 한다고 예단할 수 없다"며 "개편안 목적은 심의를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객관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하자마자 "최저임금이 시장에서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인상돼 부담을 준다는 시장의 우려가 있다"며 "내년(2019년) 1분기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총리가 직접 "속도조절을 위해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바꾸겠다"고 밝힌 마당에 "속도조절 기조가 아니다"는 이 장관 설명은 납득하기 힘들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새로 들어간 고용수준·기업 지불능력·경제성장률도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가지고 어떤 기준의 데이터를 반영하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 이 장관은 "기업 지불능력에 대한 통계를 어떤 자료를 사용할지는 전문가들이 모여 협의할 문제"라며 "한국은행 기업동향 분석과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 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론화 과정은 매우 짧다. 정부는 2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이달 중 의견수렴을 마치겠다는 방침이다. 10일 전문가 토론회를 시작으로 이달 중 전문가·노사토론회, TV 토론회, 대국민 토론회를 집중 개최한다. 21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 대국민 의견수렴을 한다.

이 장관은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최저임금 제도개선 TF에서 논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노동계 입장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안은 아니다"며 "노동계도 전체 내용을 자세히 보고 나면 그렇게 노동계를 배제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개편안을 만들어 합의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인 이남신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최저임금 제도개선이 필요하지만 성급하고 졸속적인 방식은 안 된다"며 "정부가 사용자 입장만 대폭 반영해 일방적으로 이원화 방안을 제출해 놓은 상황에서 합리적인 논의가 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최저임금 결정을 할 때에는 사회정책적 판단을 두루 해야 하는데, 구간설정위에서 일부 경제학자들 중심으로 경제여건을 고려한 절충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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