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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 기쁜 날 꿈만 같은 날" 426일 만에 땅 밟은 파인텍 노동자

기사승인 2019.01.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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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플렉스 공동행동 지난 11일 고공농성 해단식 … 노사 '고용보장·단체협약 체결' 합의

   
▲ 홍기탁·박준호 조합원이 농성 해단식에 모인 연대단체 회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1일 오후 3시50분.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서 겨울 볕에 검게 그을린 노동자가 119 구급대원 안내를 받아 수직 난간을 내려왔다.

80센티미터에 불과한 공간에서 두 번의 겨울을 난 몸이었다. 팔과 다리가 돌처럼 굳어 있는 듯했다. 움직임은 느렸고, 간혹 멈췄다. 안전을 위해 몸에 밧줄을 둘렀다지만 보는 이들은 가슴을 졸였다. 25분에 걸쳐 하강작업이 이뤄졌다. 두 노동자가 426일 동안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다시 땅 위에 섰다.

새들도 오지 않은 하늘감옥, 두 번의 겨울 난 노동자들

같은날 오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지회장 차광호)와 스타플렉스(대표이사 김세권)는 해고노동자를 다시 고용하고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양측은 올해 7월부터 파인텍을 정상 가동하고 지회 조합원 5명을 업무에 복귀시키기로 합의했다. 회사의 정상운영과 책임경영을 위해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이사가 파인텍 사장을 맡는다. 올해 1월부터 3년간 고용을 보장한다.

회사는 2019년 1월1일부터 6개월간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로 임금 100%를 지급하고, 지회와 올해 4월까지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급여는 최저임금에 1천원을 더한 수준으로 정한다.

합의안이 마련된 후 김옥배 부지회장이 굴뚝에 올라 동료들에게 농성 중단을 설득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2017년 11월12일 굴뚝에 올라 스타플렉스에 고용·노조·단협 승계 약속이행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했다. 새들도 오지 않는다는 까마득한 하늘감옥에서 말이다.

지회와 회사의 갈등은 2010년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해 스타케미칼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회사는 경영악화를 이유로 2014년 스타케미칼 공장 문을 닫아 버렸다. 그해 5월 차광호 지회장은 스타케미칼 구미공장 45미터 굴뚝에 올라 농성에 들어갔다. 회사는 농성 408일 만에 고용·노조·단협 승계를 약속했다. 그렇게 세워진 회사가 파인텍이다. 그런데 파인텍은 공장 가동 8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두 명의 노동자는 회사에 약속이행을 촉구하며 또다시 굴뚝에 올랐다. 두 사람은 차광호 지회장이 세운 역대 최장기 굴뚝농성 기록을 다시 썼다.

노사는 지난해 말 교섭을 재개했다. 이달 10일까지 6차례 교섭이 이뤄졌다. 지회는 스타플렉스 직접고용 혹은 자회사 고용시 고용 담보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양측은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20시간 넘는 밤샘교섭 끝에 절충점을 찾았다. 지회 관계자는 "부족한 대목이 있는 합의안이라서 두 조합원을 어렵게 설득한 끝에 고공농성을 마무리하는 것에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가족보다 큰 동지애로 버텼다"

두 고공농성자가 굴뚝을 내려오는 장면을 보기 위해 서울에너지공사 동문 앞으로 수많은 취재진과 인파가 몰렸다.

박준호 사무장이 먼저 수직 난간 시작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박 사무장이 가장 좋아한다는 민중가수 박준씨가 현장에서 <노동은>을 불렀다.

두꺼운 외투에 파묻힌 앙상한 몸집의 두 노동자가 연달아 난간과 계단을 내려왔다. 두 사람은 이달 6일부터 단식까지 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땅을 향해 나아가는 두 노동자를 향해 “박준호 힘내라” “홍기탁 힘내라” “우리가 함께할게”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들고 눈시울을 붉혔다.

땅에 닿은 노동자들에게 수녀들이 꽃을 건넸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는 새 신발을 선물했다. 여러 사람이 울음을 터뜨리며 그들을 끌어안았다. 두 노동자는 들것에 몸을 기댄 채 소회를 밝혔다.

홍기탁 전 지회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고맙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중간중간 울음이 섞였다. 말이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홍 전 지회장은 "5명의 조합원과 너무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20년 넘게 지켜 왔던 민주노조인데 그거 하나 지키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진짜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고 외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박준호 사무장은 "5명의 동지들과 함께 가족보다 큰 동지애로 여기까지 왔다"며 "단식까지 하며 저희 투쟁에 연대해 주신 분들, 저희 투쟁에 관심을 보여 준 전국의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박 사무장은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현장으로 돌아가 동지들이 보여 준 마음을 받아 앉아 올곧게 나아가겠다"고 덧붙였다.
 

▲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426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박준호 조합원이 지난 11일 오후 농성을 마무리하고 땅을 밟았다. 박준호 조합원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정기훈 기자>

"3년 전 약속, 이번에는 지켜야"

차광호 지회장은 지난달 10일부터 단식농성을 했다. 송경동 시인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나승구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박승렬 NCCK인권센터 소장은 같은달 18일부터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열병합발전소 농성장에서 굴뚝농성 해단식을 개최했다. 투쟁 경과를 보고하고, 참여자들의 소감과 향후 계획을 밝히는 자리였다.

송경동 시인은 준비한 글을 읽었다.

"좋은 날이다. 기쁜 날이다. 꿈만 같다. 정의가 승리한 날이다. 우리 사회 인권의 존엄이 바로 세워진 날이다. 이런 소중한 선물을 모두에게 전해 준 파인텍 5명의 동지에게 고맙다. 다시는 누구도 굴뚝에 오르지 않는 세상, 그런 희망을 함께 나누자."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양보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있는데 회사가 애초 합의사항을 지키기만 했어도 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가 더 이상 노동자가 단식하고, 고공농성을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합의는 3년 전 약속을 되풀이한 것으로 이번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은 국민과 함께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고공농성자는 오랜 고공농성과 단식으로 극심한 체중감소와 탈수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땅을 밟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량을 타고 녹색병원으로 후송됐다. 현재 안정을 취하며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 파인텍 싸움에 연대해 온 시민들이 지난 11일 홍기탁·박준호 조합원이 굴뚝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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