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정부·여당이 발의한 관련법 개정안이 노동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만든 ‘3자 개입금지’ 제도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여당 공익위원안 토대로 지난달 28일 법안 발의

16일 국회에 따르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것으로,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가 지난해 11월20일 발표한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했다. 고용노동부와 협의해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정 합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익위원안은 사실상 정부·여당안으로 볼 수 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안 중 노조법 개정사항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과 노조활동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조 조합원이 아닌 자가 임원에 선출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익위원들은 “비종업원인 조합원의 기업 내 조합활동이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을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며 “기업별노조에 한해 노조 임원이나 대의원 자격을 종업원인 조합원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까지 금지된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과 임원활동을 허용하면서도, 기업별노조의 경우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만 임원 자격을 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기업별노조 임원자격을 제한한 것과 관련해 헌법이나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권고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종업원 아닌 자 활동시 사용자에 통보, 초기업노조 제약”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해고자의 경우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까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한 노조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한 의원은 해당 조항을 그대로 뒀다. 이와 함께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은 조합원수 산정에서 제외하고, 임원이나 대의원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국회 헌법33조위원회와 노동법률단체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ILO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촉구 노동법률단체 공동토론회’에서 한정애 의원 개정안에 대해 “공익위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애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대외협력부위원장은 “결국 해고자를 포함해 비종업원은 사업장의 노조 임원이나 대의원으로 선출될 수 없고, 일정 기간 이후에는 조합활동권을 박탈당한다”며 “노조법상 노동조합이 아닌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 외에 현행 제도보다 개선되는 내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정애 의원 개정안에는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적·시기·장소·인원 등을 정해 사용자에게 통보해야 하고 사용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부분도 논란이 거세다.

윤애림 대외협력부위원장은 “지금까지 쌓인 판례와 달리 초기업노조 간부·조합원들이 조직대상인 사업 또는 사업장에 출입하거나 조합활동을 하는 데 추가적인 제한을 받게 된다”며 “사내하청과 특수고용직노조 간부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은 “해당 조항을 근거로 사용자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비종업원인 자의 출입을 비롯해 노조활동을 거부하려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 실장은 “외부 노동활동가의 노조활동 지원을 탄압하는 제도로 활용됐던 과거 3자 개입금지 조항의 부활을 보는 것 같아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정애 의원 “심사 과정에서 논의할 수 있다”

한정애 의원은 <매일노동뉴스> 통화에서 “노조활동 허용을 기업별노조와 산별노조는 달리 적용해야 한다는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을 (개정안에) 충실히 반영했다”며 “법안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당이 법안을 발의하거나 당론을 정하면 보수야당이 반발하고, 뒤이어 재계 입장을 반영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주 52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산입범위를 확대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그랬다. 노동계가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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