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고용노동부는 으레 사업장 근로감독을 하고 결과를 내놓는다. "법 위반 사항이 수십 건"이라는 감독 결과와 기술적 해법 중심의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그러면 사건은 종결된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정부 사고조사 방식으로는 산재사망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청인 발전 5사에 책임을 묻는 한편 반복되는 죽음을 막지 못한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조사대상에 포함하는 민간 참여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노동부도 조사대상에 넣어야”

시민대책위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나온 얘기다. 시민대책위는 이날 간담회에서 고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앞으로 구성할 진상규명위원회의 역할과 과제를 논의했다.

시민대책위는 “위험 문제를 사전에 해결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며 “검·경 조사와 근로감독, 안전보건진단으로는 진상을 밝히기 어려워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지난 10년간 노동자 12명이 일하다 숨졌다. 2017년 11월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가 협착사고로 사망한 뒤 정기근로감독과 안전보건진단이 이뤄졌다. 그런데 불과 1년 만에 또 다른 노동자가 협착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시민대책위 법률지원단 송영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간담회 발제에서 “진상규명위 역할과 활동은 컨베이어 운전원들의 작업인원, 작업내용과 방식, 설비안전 결정권자인 서부발전의 위법행위에 대한 책임규명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안전보건진단 개선이행 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위험사업을 용인한 노동부 직무유기도 조사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훈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또 다른 발제를 통해 진상규명위가 풀어야 할 의문으로 △컨베이어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은 이유 △옥내저탄장 작업에 대한 위험성 평가 △발전사들의 외주화 유지 이유 등을 꼽았다.

네 번째 민간 참여 산재 진상규명위 꾸려지나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법 위반 여부를 파악하고 기술적 대책을 마련하는 한정된 사고조사에서 벗어나야 산재사망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며 “정부 사고조사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사망 영역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 조직은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 참사 이후 구성된 서울시의 진상규명위원회·진상조사단과 2017년 삼성중공업과 STX조선해양 산재사고를 계기로 만든 노동부 조선업 중대재해 사고조사위원회가 있었다. 같은해 잇단 집배노동자 과로사·과로자살로 인해 구성된 집배노동자 노동조건 개선추진단이 있다.

최명선 실장은 민간이 참여한 진상조사의 특징으로 △고용구조·산업적 특징·조직문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조사 △계약관계에 대한 조사 △안전관리 시스템과 현장 노동조건 조사 △현장노동자를 포함한 광범위한 의견수렴 △구조적 대책 마련 △조사위가 도출한 권고안에 대한 이행방안 마련을 들었다. 그는 “세 가지 사례에서 도출한 원칙과 기준을 바탕으로 진상규명과 결과물의 실질 이행을 위한 방안을 청와대에 제안했다”며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실질적 재발방지대책 이행을 위해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대책위와 유족은 지난 11일 청와대에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구조적·근본적 대책 마련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정부와 유족·시민대책위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 구성을 제안했다. 19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구한 상태다.

김혜진 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유족이 고인 장례를 미루면서까지 진상규명위 구성을 요구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이라며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던 정부의 침묵이 기이하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 오전 서부발전 태안화력본부에서 특별산업안전감독 강평회를 했다. 노동부는 발전 5사 감독 결과를 종합해 18일께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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