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 젊은이의 죽음에 빚지고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자들과 일터에서 현장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터의 다양한 위험과 위험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이 조금 강화된 제재로 가시적인 해결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와 그동안의 무책임에 대응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생각할 것이다.

그동안 부족했던 사업주의 위험 인식과 관리가 강화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미흡한 행정기관의 감시와 제재 역시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사고 뒤에 자주 들리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바로 많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고 예방조치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도 김용균과 그의 동료들이 3년간 28번이나 일터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위험 인식과 개선 요구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안전보건 예방조치일 경우가 많은데, 현실에선 너무 힘없이 묵과된다. 이를 활성화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산업재해 예방활동일 수 있을 것이다. 사업장수에 비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부족해서 전반적 감독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반복할 바에야 직접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현장 요구사항에 권위를 주고 요구사항이 실제 현장 목소리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조치가 노사협의하에 실행됐는지를 효율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사업장 안전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법적 제도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다. 산업안전보건위는 노사 동수로 구성되고 사업장 안전보건에 대한 여러 사항(산업안전보건법 19조2항)을 노동자가 안건으로 상정 심의·의결할 수 있다. 심의·의결된 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제도 자체의 한계가 있다. 50인 이상의 일부 유해위험 업종과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상당수 사업장에서 의무가 없으며, 도급 노동자나 사내하청 노동자의 참여가 보장돼 있지 않다. 안건이 산업안전보건법 19조2항에 해당되더라도 아예 안건 자체를 상정하지 않고 산업안전보건위와 상관없이 사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해 버리면 별다른 제재를 할 수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너무나 많은 수의 사업장에서 산업안전보건위가 개최되지 않고 있고, 안전보건 담당자가 서류로만 안건과 회의록을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행태가 매우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감독기관이 실태 확인과 감독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 개인적 경험으로는 알지 못한다. 물론 상당수 사업장, 특히 규모가 크거나 노조가 조직돼 있는 사업장에서는 안건을 수렴해 상정하고 노사 심의 그리고 결과 공지를 통해 매우 의미 있는 결과물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중소규모 사업장과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은 많은 사업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안건만을 매년 반복 작성하는, 안전보건 담당자 개인의 연례 서류작업으로 변질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례로 필자가 보건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30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를 보면 산업안전보건위를 설치해야 하는 70여개 사업장에서 실제 회의가 개최되는 곳은 불과 5~6곳에 불과하다. 회의록을 자세히 보면 현장에서 요구하는 안건이 상정됐는지, 실제로 회의가 개최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재해 위험률이 높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있으며, 이를 살릴 수 있는 법적 제도마저 거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위 설치와 개최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릴 수 있지만 실제 부과됐는지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산업안전보건위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도 필요하나,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한 감독기관의 노력과 책임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고 그것의 강화가 곧 산재예방이라는 인식을 사업장에 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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