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공청회 때 (교육부) 자료를 보고 황당했습니다. 민호가 실습 나갔을 때 내용과 거의 흡사했으니까요.” 2017년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고 이민호군 아버지 이상영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가 지난 17일 직업계고 학생·교사·기업 관계자가 참여한 공청회를 열고 현장실습 기업을 확대하는 내용의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보완방향’을 내놓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직업계고 학생들의 안전사고가 잇따르면서 지난해 교육부가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지 1년 만에 정책이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현장실습대응회의는 30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부가 현장실습을 교육과정 운영 중심이 아니라 또다시 기업요구 중심·취업률 중심으로 판단하고 정책을 뒤집으려 한다”며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개악안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실습대응회의에는 전교조·금속노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속해 있다.

선정기준 엉망인 선도기업을 확대한다?

공청회에서 발표된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향에는 현장실습 기업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장실습 참여기업 부족으로 인한 (학생들의) 경제적 보상 상실, 늦은 취업으로 인한 취업 불안감 상승을 이유로 들었다. 교육부는 보완방향을 확정해 31일 발표할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2월 안전한 환경에서 현장실습이 이뤄지도록 선도기업을 지정하는 내용의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선도기업에서 실습하면 수업일수 3분의 2 시점부터 조기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선도기업은 시·도 교육청이 관계기관과 협력해 기준을 설정하고 위원회 검토를 거쳐 선정한다.

그런데 지난 17일 교육부 발표안에는 “정부부처·지자체 인정 우수기업은 선정기준을 고려해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대응회의는 “서울·전북·충남 등의 지역에서 선도기업 선정 과정·실태조사 과정·실습운영 과정 전반이 모두 엉망인 것을 확인했다”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이 수두룩했고, 현장실습 나간 학생이 ‘이런 기업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내도 무시하고 선도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선도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이 학생들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선도기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응회의 관계자는 “현장실습 기간은 다양한데 학습 중심 현장실습 3개월, 조기취업 현장실습 3개월씩 6개월로 진행했던 현장실습 기간을 조기취업 현장실습 6개월로 단일화했다는 점도 문제”라며 “현장실습을 조기취업 관점에서 보려 한다”고 비판했다.

“학생·학부모·교사 이야기 들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교육부 발표안을 비판하는 직업계고 학생·교사·학부모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상영씨는 “교육부안에는 사고가 났을 때 어느 부처가 책임지는지가 여전히 없다”며 “고용노동부인지 교육부인지 관계부처에 직접 묻기도 했지만 답변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관리주체가 정확히 정해져 있었으면 우리 아이도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책임주체를 떳떳하게 공표하고, 더 이상 기업체를 먹여 살리려고 학생들을 사탕발림으로 꾀지 마라”고 말했다.

광주 전자공업고등학교 재학생 박상민군은 “친구들이 현장실습을 나가는 시기가 됐는데 안전이 걱정된다”고 발언했다. 최민 활동가는 “교육부는 현장실습 제도 개정의 이유를 학생과 학부모·교사가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곳에 있는 이들은 학생과 학부모·교사가 아니냐”고 일갈했다.

한편 현장실습 중 숨진 학생들의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금속노조 대회의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현장실습희생자유가족모임(가칭)을 발족했다. 이상영씨와 2016년 외식업체 주방보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목숨을 끊은 고 김동균군의 아버지, 2017년 전주 LG유플러스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홍수연양의 아버지,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씨 어머니 등 산재·재난·안전사고 피해자 유가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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