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씨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7일부터 사흘간 고인의 장례가 치러진다. 시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은 "정부·여당 약속이행을 점검하고 발전소 전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용균씨는 떠나지만 살아남은 자의 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

자회사 고용 합의, 직접고용 논의 끝나지 않아

정부·여당 발표에 따르면 김용균씨 죽음과 관련해 정부와 노동자가 참여하는 3개의 위원회가 꾸려진다. 먼저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김용균씨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고 재발방지책과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고인이 일했던 직종인 발전소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 정규직 전환을 위해 통합 노·사·전 협의체를 만든다. 정규직 전환 논의가 시작조차 되지 않은 경상정비 분야도 통합 노·사·전 협의체를 구성해 정규직 전환을 논의한다.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곳은 진상규명위다. 정부·여당은 공공기관을 만들어 발전 5사의 연료·환경설비운전 전환 대상을 고용한다고 발표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원청이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의 목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정부·여당과의 논의 과정을 지켜본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이를 두고 "십수 년간 민영화·외주화를 강행한 산업통상자원부와 공기업 기득권 관료들의 여전한 태도에 깊이 절망했다"고 말했다.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정부 내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다.

진상규명위 활동에서도 논란이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대책위 관계자는 "진상규명을 요구한 이유는 어떻게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조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는 의미였다"며 "하청노동자 목소리를 차단하는 시스템, 즉 원·하청 문제와 위험의 외주화를 검토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은 나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진상조사위에서 하청노동자 죽음이 반복되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는 점을 진단해 나가다 보면 정부가 십수 년간 추진한 발전 민영화 정책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고용구조·위험의 외주화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 나올 것이고, 이런 권고가 나오면 향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도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상규명위가 원청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재발방지책으로 발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되는 진상규명위 위원장은 시민대책위가 추천하는 인사가 맡는다. 정부 추천 전문가와 시민대책위 추천 전문가·노동자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시민대책위는 "조사범위와 권한·권고를 이행하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냈기 때문에 진상규명위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겠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6월30일까지 활동하고 권고안을 발표한다.

진상규명위 결론 따라 '정규직 전환 방식' 가닥 잡을 듯

연료·환경설비운전 분야 정규직 전환을 위한 통합 노·사·전 협의체 논의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발전 5사가 지난달 구성한 협의체에 공공운수노조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식물상태로 전락해 있다. 정부·여당 발표에 따라 노조가 참여하기로 하면서 전환방식·임금산정·노동조건 문제를 두고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산업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해당 직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5개 민간업체 2천283명이다.

경상정비부문 정규직 전환 논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산자부와 발전노조의 발표를 종합하면 민간업체 8개사에 2천500명에서 3천명의 비정규직이 일한다. 민영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데다, 하청-재하청 구조가 복잡해 인력통계도 들쑥날쑥이다. 경상정비업무 중 정규직 전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노·사·전 협의체에서 치열한 논의가 예상된다.

정부·여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라는 원칙 아래 세부업무 영역을 분석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대원칙을 발표문에 담았다. 이태의 부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경상정비부문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대책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민영화된 부문의 정규직화라는 새로운 모델까지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며 "산자부나 발전사 원청의 의지만으로 민영화를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정부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수 있게 만들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이 만들기로 한 (가칭)발전산업 안전강화 및 고용안정 TF는 부처 간 의견을 조율하고 발전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범정부기구 성격을 띤다. 진상규명위 활동과 권고안 이행을 보장하고 정규직 전환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지원한다. 시민대책위는 여당 의원들을 통해 정부 TF 활동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시민대책위와 유가족은 정부와 별도로 또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은 비정규직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 처우개선을 위해 유가족과 시민대책위가 정하는 비영리법인에 3년간 4억원을 기부한다. 시민대책위는 이를 종잣돈 삼아 '김용균재단'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고인의 모친 김미숙씨의 뜻에 따라 일하다 다치거나 숨지는 노동자의 가족을 지원하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과 관련한 사업을 준비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