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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외주화 제동 건 '노동자 김용균'

기사승인 2019.02.11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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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이끌어 … 숨진 지 62일 만에 영면

   
▲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 노동자 고 김용균씨 영결식이 지난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고인의 유족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입사 두 달 만에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었던 청년노동자 김용균씨가 지난 9일 영면했다. 대통령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의를 이끌어 냈다. 또 원청에게 산업재해 발생 면죄부를 주던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시켰다. 민영화·외주화로 위험업무를 비정규직에게 끊임없이 전가하던 사회 흐름은 '김용균' 이름 석 자 앞에 멈췄다.

김용균은 대통령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국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사망당시 24세)씨는 지난해 12월11일 새벽 3시23분께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죽은 채 동료에 발견됐다. 1년 계약직 현장운전원으로 채용된 지 3개월 만에 변을 당했다. 고인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2인1조로 일을 해야 하는데, 혼자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신은 처참했다. 송경동 시인은 조시 <진상을 규명해야지요>에서 "청년의 목은 어디에 뒹굴고 있었는지. 찢겨진 몸통은 어디에 버려져 있었는지. 피는 몇 됫박이 흘러 탄가루에 섞였는지. 진상을 규명해야지요"라고 처참한 죽음을 표현했다.

사고 당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과 만납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씨 죽음은 이 자리에서 공개됐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 연대회의 간사가 울먹이며 말했다.

"오늘도 동료가 죽었습니다. 정규직 안 돼도 좋으니 죽지만 않게 해 달라고 했는데 또 동료를 잃었습니다. 하청노동자지만 우리도 국민입니다."

▲ 2차 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이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날 기자회견 참가를 신청하는 인증샷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가 고인의 마지막 사진이었다. 죽기 열흘 전 모습이다.

고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발전 5사에 일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7천700여명이다. 전체 직원(1만9천700여명)의 39%에 이른다. 이 중 2천200여명의 연료·환경설비운전부문은 정규직 전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3천여명의 경상정비부문은 전환 대상에서 빠져 있다. 발전회사들은 "경상정비는 생명·안전업무가 아니라서 직접고용할 의무가 없다"고 버텼다.

발전소에서 일어난 산재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사고가 난 서부발전을 포함해 5개 발전사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발생한 346건의 사고 중 337건(97%)이 하청노동자 업무에서 발생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9년간 발전노동자 40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는데, 92%인 3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고인은 컵라면, 탄가루가 묻은 슬리퍼, 시커멓게 변한 수첩, 그리고 고장 난 손전등을 유품으로 남겼다. 손전등은 회사가 지급한 것이 아니었다. 외주화에 따른 저비용 구조가 노동자에게 안전도구 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형태로 나타난 셈이다.

고인의 동료들은 현장 모습을 이렇게 증언했다.

"저도 용균이처럼 낙탄을 손으로 집다가 헬멧이 (컨베이어)벨트에 닿은 적이 있어요. 운 좋게 헬멧이 벗겨져서 그랬지 아니면 저도 휩쓸려 갔겠죠. 안전망이나 펜스를 설치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해 줘요."

"석탄을 이송하는 기계에 이상이 있어서 확인하러 갔다가 옷이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 상태로 30분을 버티고 있다가 누군가 제 소리를 듣고 기계를 멈췄어요. 그 사고로 어깨가 나갔어요."

유족 장례 미루며 "또 다른 용균이 없도록 해 달라"

고인의 모친 김미숙씨 등 유족은 장례를 미룬 채 "용균이의 죽음이 더 이상 없게 해 달라"며 대책을 요구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를 꾸려 가족 곁을 지켰다.

지난해 12월27일 위험작업의 사내하도급을 금지하고 산재 발생시 원청에게 책임을 묻는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다. 개정안 국회 통과를 지켜본 김미숙씨는 "아들 앞에 할 말이 조금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김용균씨가 했던 업무가 개정안에 명시된 위험작업에서 제외된 탓이다.

▲ 정기훈 기자

유족과 시민대책위는 발전소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재발방지를 위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지난달 22일에는 고인 시신을 충남 태안에서 서울로 옮기며 "설 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대책을 수립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같은날 시민대책위 대표단 6명이 단식에 들어갔다.

김용균씨가 숨진 지 58일 만인 이달 5일 정부·여당은 김씨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밝힐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의를 시작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유족과 시민대책위는 9일 고인 장례를 치렀다. 노동자 김용균은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역 뒷자리에 묻혔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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