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

누군가가 구속되기를 바라고,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기다리는 것은 늘 마음 한켠에 혼란을 일으킨다. ‘불구속 수사 원칙’이라거나 다른 당위적인, 논리적인 이야기를 다 떠나서 누군가가 잘못되기를 바랄 만큼 분노를 갖는 것은 스스로 마음 또한 좋지 않게 만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구속 소식이 들리면 다행이다, 잘됐다, 나도 모르게 안도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점점 많아진다. 그러다가 보석으로 풀려나면 기대와 안도의 정도만큼 허탈함도 커진다.

삼성의 노동조합 파괴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됐던 전직 경찰청 정보국 경정 김아무개씨의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지난달 석방됐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 협력업체 대표들의 단체협상 자리에 삼성측 당사자로 참여했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삼성측에서는 그를 ‘사장’ ‘전무’라고 불렀다. 김 경정은 단체협상에 직접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노조 동향 등 정보를 수집해서 삼성측에 전달하고 그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았다. 이러한 혐의가 확인돼 지난해 7월 구속됐다. 정보경찰이 그 정보수집 권한을 가지고 삼성그룹 노무부서 담당자를 자처했다는 믿지 못할 현실이 눈앞에 낱낱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은 김씨가 자신의 권한을 전방위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씨는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때 노동조합에 접근해 화해를 중재하려고 했다. 또 경찰 간부들의 대기업 재취업을 중개했다. 실제 고위 경찰 간부들이 재취업을 하기도 했다. 검찰 압수수색 결과 김씨가 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 간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이 확인됐다. 정보국 내에서 노동정보 담당으로 있던 김씨가 2011년 11월께 정보국이 아닌 다른 부서로 발령되자 이틀 만에 다시 경찰청장 지시로 노동정보 담당으로 돌아와 업무를 계속 담당했다. 그의 개인적인 욕망과 그의 충성이 필요한 이들의 욕구가 맞물려 삼성 노조파괴에 이르기까지 그의 만행이 정당한 업무집행으로 둔갑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삼성과 경찰, 그리고 김씨 만행에 얽혀 있는 많은 이들은 김씨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보경찰의 업무와 권한에 대한 문제점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그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가 김씨였다.

지난해 4월 경찰개혁위원회는 경찰의 정보활동 개혁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정보경찰’이라는 낯설지만 언제나 존재했던 이들의 주된 업무는 정치·경제·노동·사회·학원·종교·문화 등 제 분야에 관한 정보수집이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수집할 수 있는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정보수집활동을 하는 것이 헌법질서에 반하고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경찰개혁위 권고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경찰개혁위 권고안이 나온 이후에도 김씨 사례뿐만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정보경찰이 정권 입맛에 맞는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권리를 보장하도록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권한을 부여받은 경찰이, 자본에 충성하기 위해 그 권한을 남용해도 용인되고, 오히려 입신양명의 지름길이 됐던 부끄러운 과거가 되풀이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김씨의 석방 소식이 유난히 뼈아프게 들려왔던 이유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권한을 함부로 사용해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들의 민낯이 너무도 부끄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이 부끄러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시는 김씨와 같은 이들이 나타날 수 없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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