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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보건의가 존재 의미를 가지려면

기사승인 2019.02.14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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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이선웅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업장에서 직업성 질환 발생이 우려될 때 우리는 어떻게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명확히 했다. 노동자 스스로 급박한 위험을 판단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장 재해 예방과 개선에 대한 최소한의 통로가 명료해진 셈이다. 하지만 업무상사고와 달리 업무상질병은 노동자가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면이 많고, 그로 인해 위험의 객관적 평가에도 보다 다양한 전문적 방법과 과정이 요구된다. 직업성 질환에서 이 과정의 결과는 흔히 예방과 개선의 최소한의 통로에 접근할 공인된 절차도 갖지 못한 채 소리 소문 없이 사장되곤 한다.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 한 분이 작업 중 눈이 따갑다고 했다. 현장을 점검한 결과 새로 설치된 자외선 경화 도료 공정의 문제였다. 노동자가 특수도료를 교반기에 바가지로 투입할 때 증상이 발생했다. 도료 성분 중 각막 자극이 심한 물질이 그 원인으로 생각됐다. 보안경 착용과 노동자 스스로의 주의로 증상은 점차 좋아졌지만 얼마 후 계열사의 같은 공정과 같은 작업에서 그 도료가 눈에 튀어 실명에 가까운 사고가 일어났음을 알게 됐다. 잠재된 위험에 대해 예방적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산업보건의로서 교반기 개선과 세안시설 설치를 요구했다. 몇 달간 거의 매달 방문해 사업장과 소통했지만 심각한 질환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실제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른 사업장인 포장박스 겉면을 인쇄하는 공장에서 현장을 순회했을 때 도료 냄새가 매우 심했고 환기 상태도 좋지 않았다. 인쇄·도장공정 노동자 두 분은 특수건강검진에서 톨루엔 소변 대사물이 노출기준을 초과하거나 근접해 있었다. 그중 한 분은 간 수치도 약간 높았는데 만성적인 피로와 멍한 느낌을 호소했다. 특히 같은 사업장에 근무하는 아내가 남편 증상을 많이 걱정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는 노출기준 절반 정도였지만 이를 신뢰하기 어려웠다. 측정 결과와 검사 소견만으로는 업무관련성을 판단하기는 어려웠지만, 담당 산업보건의로서 종합적인 판단으로는 관련 공정 노동자들의 유기용제 고노출이 추정됐고, 보호구 착용과 더불어 근본적인 환기개선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업장은 공장이전 가능성 등의 여러 이유를 들어 이에 대한 조치를 실행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은 건축자재용 패널 생산 사업장으로, 천식 유발물질로 매우 잘 알려진 메틸렌디페닐디이소시아네이트(MDI)가 주성분인 접착제가 연속 투하되는 공장이었다. 현장 확인을 하면 직업성천식 위험을 느끼게 된다. 두 개 라인에서 월 8톤의 접착제가 지속적으로 투하되는데 접착제 경화를 방지하기 위해 온풍기가 상시 가동되고 있었다. 국소배기는 없었고 공정은 협소하며 전체 환기는 미흡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현장 작업 상황에 따라 질환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질환예방을 위한 환기시설 강화를 지시했는데, 역시 예방적 현장개선 조치에 대해서는 상부에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 그 후 뒤늦게 그 공정에서 천식을 치료 중인 두 명의 노동자를 알게 됐다. 이들에 대한 수시 건강진단을 의뢰했고 그에 따라 사후 개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필자는 보건관리 전문기관에서 중소규모 사업장들의 산업보건의를 맡고 있다. 산업보건의는 위촉과 선임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 건강장해 원인조사와 재발방지(산업보건의 직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22조) 같은 직업성 질환 관리를 위해 사업장 안전보건체계에 특별히 삽입된 전문인력이다. 법리적으로는 사업주의 직접적인 지휘·감독 체계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결국 직업성 질환 위험을 판단해 개선에 도달하도록 하는 과정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노동자를 대신해 가지게 될 수도 있게 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사업주 의무인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과 근로조건 개선을 실행하기 위해 관리책임자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를 지도하며 관리감독자는 이에 협조해야 한다고 돼 있고(동법 시행령 10조), 이를 위해 사업주는 산업보건의에게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줘야 한다(동법 시행령 22조)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그 권한이 현장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기능하기 위해 어떤 추가 장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꼭 필요한 조치조차 사업주와 독립적으로 현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능은 위 예와 같이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 산업보건의가 존재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필수적 조치에 대해 사업주에 권고할 절차가 행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권고 불이행시 행정기관에 보고할 권한도 있어야 한다. 산업보건의의 독립적 권한에 대해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선웅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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